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2007년 주연한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ㆍ피 묻은 다이아몬드)는 1999년 정부군과 반군이 치열한 내전을 벌인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정부군이나 반군 모두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는 이 지역을 차지한 뒤 어린 아이들을 채굴현장으로 내몰고, 그렇게 캔 다이아몬드를 서구시장에 불법으로 내다 팔아 다시 그 자금으로 무기를 구입해 아이들의 부모를 죽인다. 2002년 내전이 마무리되기까지 2만명의 국민이 불구가 됐고 7만5,000명이 죽었으며 200만명의 난민이 생겼다.
전 세계에 유통되는 다이아몬드의 상당량이 이렇듯 분쟁지역과 노동착취 등 극심한 인권침해, 그리고 민간인의 피의 대가로 채굴되고 유통되고 있다고 영화는 고발했다. 국제 구호활동가 한비야씨는 손목이 잘린 한 아이를 만난 뒤 책(지도 밖으로 행군하라ㆍ2005년)에서 "나는 앞으로 사랑의 징표나 결혼 예물이 되어 누군가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을 다이아몬드를 볼 때마다 잘려서 피가 뚝뚝 흐르는 아이의 팔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적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에 이어 이젠 아프리카에선 '블러드 아이보리'(blood ivoryㆍ핏빛 상아)가 문제다. 코끼리와 같은 대형 포유류들이 전쟁범죄와 범죄조직의 돈줄이 되면서 멸종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아프리카 전역에서 반군들과 민병대 조직들이 밀렵 코끼리의 상아를 수입원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오래 전부터 상아를 귀중품으로 여겨온 아시아 국가들의 수요가 최근 들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보도했다.
인디펜던트가 전한 야생동물 밀렵의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많은 수의 피 묻은 코끼리 시체가 아프리카 전역 여기저기서 어렵지 않게 발견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순찰에 나선 보호단체 관계자나 경찰이 무기를 갖춘 밀렵꾼들의 공격을 받거나 군사분쟁에 휘말려 희생되는 수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상아 수요가 높은 아시아 지역에선 요즘 금 1g보다 상아 1g의 가치가 더 높다 보니, 상아 등의 밀수를 금지하고 있는 국제협정은 있으나마나다. 많은 사람들이 코끼리의 희생이 상아 때문인지에 대해선 대체로 잘 모르고 있고, 심지어 중국인의 약 70%는 상아가 손톱처럼 다시 자라난다고 믿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인디펜던트는 지적했다.
다이아몬드와 마찬가지로 상아도 범죄조직의 주요 자금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 9월 케냐 나이로비의 웨스트게이트 쇼핑몰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이슬람 반군단체 알샤바브가 대표적인 범죄단체 중 하나다. 안드레아 크로스타 케냐 야생동물보호단체 책임자는 "지난 18개월 동안 케냐 야생동물 밀렵 암거래를 조사한 결과 얄샤바브가 자금의 약 40%를 코끼리 상아의 밀거래를 통해 충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얄샤바브는 이렇게 불법적으로 밀렵한 코끼리 상아를 매월 1~3톤 가량 남부 소말리아 보내고 있다. 상아의 가격은 ㎏당 200달러 수준. 한해 아프리카에서 상아 불법 밀거래 시장규모는 70억 달러에서 100억달러로 추정된다. 케냐에서 거의 매주 3~4마리 꼴로 코끼리가 밀렵꾼들에 희생되고 있다. 알샤바브와 함께 수단의 잔자위드, 우간다의 반군조직 신의 저항 등이 중앙아프리카의 사바나지역을 코끼리 킬링필드로 만들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인디펜던트는 "아프리카 야생동물이 최근 수십 년 가운데 가장 큰 위기에 처했다"면서 "국제사회가 아프리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상아 밀거래에 연계된 중개인과 구매자 등에 대해 조사를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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