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전문 계간지로부터 내년 봄부터 일기를 연재하자는 청탁을 받았다. '시인일기'라는 형식이란다. 거기에 문단 안팎 이야기와 문학과 예술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담아달라는 거다. 나는 무엇이든 매일매일 쓰는 사람이므로 어려울 게 없겠다 싶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이래로 줄곧 일기를 쓰고 있는 사람이다. 매일매일 꾸준하게 단 몇 줄이라도 글을 쓴다. 그런 글을 모아서 산문집도 두 권이나 펴냈다.
내가 좋아하는 미국의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는 "절망도 희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글을 쓴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그런 말을 할 때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지만, 적어도 폼을 잡고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으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에게 글쓰기는 일상을 채우는 방식이었다. 나의 글쓰기 역시 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속에 자주 나오는 허름한 바와 그 안에서 쓸데없는 말을 주고받는 여자들과 미국 맥주와 담배와 비스킷의 이름들은 왜 그렇게 음울한 뉘앙스를 자아내는지. 나는 사실, 삶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자들이 아주 조금씩조금씩 그 사실을 아껴가면서 노출시키는 것이 오늘날 문학의 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그러니까 매일매일 나를 드러내며 어떤 욕망을 소진시키는 것이다.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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