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전도사로 거듭났습니다!
엠플러스한국 ‘내일은 스타’
희망은 절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진정으로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희망의 위대한 힘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수 신성훈(29)도 절망에서 희망을 배운 사람이다. 그는 3살 때 부모님과 헤어져 가수로 데뷔할 때까지 24년 동안 보육원에서 지냈다. 2012년말부터 2013년까지 5개월 동안 KBS2 TV에서 방영한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에서 아픈 과거를 대중에 밝혔다. 그는 방송에서 어머니를 찾고 싶다고 했다. 더불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소망도 피력했다.
부모님의 빈자리를 채워준 음악
꿈은 이루어졌다. 어머니를 만났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도 시작했다. 올해 7월에 자신을 키워준 대전 성심보육원의 원생들과 함께 ‘우리 서로 사랑하며’라는 곡을 녹음해 음원 수익을 보육원 측에 기부하고 있다. 그의 희망 사업이 첫 삽을 뜬 셈이다.
“저는 누구보다 보육원 아이들의 아픔을 잘 안다고 생각해요. 방송에서 밝혔듯이 이유 없는 구타로 다친 귀를 6년 동안 방치하다시피 하다가 청력을 잃을 뻔도 했고, 중학교 2학년 때는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의 몸살로 누워 있다가 보육원 형의 발길에 맞아 척추에 금이 가기도 했어요. 고통을 겪을 때마다 설움이 한꺼번에 밀려왔지만, 그때마다 저를 잡아준 부모 같은 존재가 있었어요. 바로 음악이었죠.”
초등학교 때 이미 학교에서 댄스팀을 만들어 활동했고, 중학교 때부터 각종 댄스ㆍ가요 대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고등학교 때는 보컬 팀을 만들어 리드로 활동하기도 했다. 오디션도 꾸준히 다녔다. 서울까지 갈 차비가 넉넉지 않아서 토요일 하루에 몰아서 4~5 군데씩 오디션을 봤다.
기획사에 발탁된 뒤에도 순탄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붐이 리드로 있던 ‘맥스’의 멤버로 들어갔지만 이듬해(2003년)에 팀이 해체됐고, 2007년 결성한 남성듀오 ‘플라이엠’도 기획사와의 관계 악화로 활동을 접었다. 2009년 트롯 가수로 전향한 이후 강행군을 시작했다. 2010년부터 2집 음반 제작비를 마련하려고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고 공연이 없는 날은 택배 회사에 출근해 일했다. 소위 ‘악마의 알바’로 알려진 택배 물품을 트럭에서 내리고 싣는 작업이었다.
1년에 2곡씩 보육원 후원 곡 만들고파
“인생은 셀프다. 제가 제일 많이 하는 말입니다. 육체적으론 힘들지만 마음은 행복했어요. 희망이 있었으니까요.”
2012년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 피디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그 뒤로 술술 풀렸다. 이제는 알바 없이 가수 활동에만 매진해도 될 만큼 행사와 방송 섭외가 많이 들어온다. 12월에는 그가 조연으로 출연한 장진 감독의 영화 ‘하이일’이 개봉한다. 드라마에서도 출연 제의가 들어와 있다. 그는 “얼굴을 알릴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기꺼이 달려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
더 큰 일도 눈앞에 닥쳤다. 내년부터 보육원 돕기 사업을 더 크게 벌이게 됐다. ‘우리 서로 사랑하며’와 취지와 작업 방식은 비슷하지만 이번에는 평소 친분이 있는 선배 연예인들이 작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홍석천, 하리수, 안연홍 등이 참여를 약속했고, 작곡은 ‘너의 목소리가 들려’ 메인타이틀을 비롯해 ‘구가의 서’, ‘상속자들’ 등의 OST 작업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프로듀싱팀 ‘알고보니혼수상태’가 맡기로 했다.
“우선 1년에 두 곡씩 만들고 싶어요. 1곡으로 한 보육원을 후원하는 방식인데, 이렇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전국의 모든 보육원을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는 톱스타가 되든 못 되든 자신이 선 자리에서 희망을 주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일을 죽을 때까지 계속할 자신이 있다고도 했다. 본인이 직접 그 외롭고 힘든 시절을 절절하게 겪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그날의 절망들이 이제는 희망의 의지가 되었다”면서 “올해처럼만 희망을 전하는 일은 계속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김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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