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8개월부터 길지 않은 생애의 대부분을 투병으로 보낸 다연(7ㆍ가명)이는 피를 뽑으려는 의사에게 "야 이 나쁜놈아, 내 손에 손 대지마"라며 발작적으로 소리를 지르곤 했다. 질병 자체보다 더 힘든 치료과정의 스트레스로 '마음의 병'이 심해진 것이다. 상냥했던 다연이는 거센 분노를 갑작스레 쏟아내는 버릇이 생겼다.
3일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감성센터에서 작은 손을 조물락거려 종이 인형을 만든 다연이는 '사랑이'라는 예쁜 이름을 붙여주고 오랜만에 밝은 웃음을 지었다. 미술치료사들의 지도를 받아 점토로 귀고리와 머리핀도 만들었다. 5월부터 서울대병원이 국내 최초로 개소한 감성센터에서 심리 치료를 받으며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는 것이다.
키 107㎝에 몸무게가 15㎏밖에 나가지 않는 다연이는 8개월 때부터 신증후군(신장질환의 일종)으로 어머니 김윤선(37ㆍ가명)씨와 경남 김해시 집에서 서울대병원으로 통원 치료를 다녔다. 29개월부터는 어른도 견디기 힘들다는 신장투석을 4년이나 받았다. 지난해 11월 뇌사자에게서 신장을 기증받았지만, 이번엔 면역억제제 부작용으로 100분의 1 확률로 걸린다는 림프종(혈액암의 일종)에 걸렸다. 결국 올해 4월 다시 입원해 5개월 간 항암치료를 받으며 곱게 기른 단발머리를 파랗게 밀어야 했다. 10월 퇴원한 뒤 병원 근처에 원룸을 얻어 일주일에 1~3번 통원 치료를 다니지만 면역력이 약해 항상 마스크를 쓰고, 혈압약 등 네댓 가지 약을 입에 달고 산다.
어른도 견디기 힘든 투병과정이지만 어린아이들은 이를 잘 드러내거나 해소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키운다. 미술치료는 이런 어린 환자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한 것이다. 다연이 엄마 김씨는 "얼마 전 다연이가 '엄마는 동생만 예뻐해'라고 섭섭하다는 듯 말했는데, 감정을 쌓아두지 않고 그때그때 표현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오히려 무척 기뻤다"고 말했다.
조연수 한국점토미술치료연구소 소장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뛰어 놀아야 할 시기에 병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지만 이를 잘 표현하지 못해 우울증을 겪기 십상"이라며 "미술치료를 통해 아이들이 감정을 표출하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고, 이는 병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다연이는 3일부터 감성센터가 현대차정몽구재단의 '온드림 어린이 희망 의료 사업'의 지원을 받아 시작한 미술치료 프로그램에도 참여한다. 매주 2회 1시간씩 전문가와 함께 그림 그리기, 점토 만들기, 종이접기 등 미술치료를 받는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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