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일 오후 서울 관악구의 한 다세대주택 안방에서 발달장애인 A(17)군이 아버지 B(49)씨에게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됐다. B씨는 이튿날 집 주변 야산에서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법무사 사무실 직원이었던 B씨는 10년이 넘게 A군을 돌봐왔지만 몸을 묶어두어야 할 정도로 발작이 잦아지자 더 이상 수발을 들을 수 없어 아들과 함께 목숨을 끊었다. B씨는 A4 용지 3~4장의 유서에 "이 땅에서 발달장애인을 둔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건 너무 힘든 것 같다. 가족이 아니면 이 나라에는 아이를 맡겨 놓을 만한 곳이 없다. 힘든 아들을 내가 데리고 가니 아들과 함께 묻어달라"는 글을 남겼다. 관악경찰서 관계자는 "어머니와 직장에 다니는 누나가 있었지만 A군의 체구가 커지고 병세가 악화돼 수발이 힘들었다"며 "A군의 가족은 활동보조인 등 정부의 장애인 복지혜택은 받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19만명에 달하는 국내 발달장애인(지적 장애인, 자폐성 장애인) 가족에게는 남의 일같지 않은 비극이다. 누군가 한 명이 24시간 붙어 돌봐야 하기 때문에 경제활동과 사회활동을 온전히 포기해야 하고 스트레스도 엄청나다. 이 같은 어려움에 처한 발달장애인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방안이 법제화된다.
국회 보건복지위 김명연 새누리당 의원은 6일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안'을 발의한다. 2015년부터 발달장애인 부모가 장애 자녀를 청소년수련원 등에 맡기고 휴식을 취하거나 가족 캠프에 갈 수 있도록 바우처를 지급하고, 발달장애인의 형제자매가 교우관계상담, 학업상담, 정신과 상담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2012년 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발달장애인을 돕는 비장애인 형제ㆍ자매의 37.9%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다. 보호자의 여가생활 만족도는 14.6%에 지나지 않았다.
이길준(40) 한국장애인부모회 부장은 "발달장애인 가족의 70~80%가 우울증을 경험하며 견디다 못해 부부가 이혼하거나 별거하는 일도 많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28) 아들과 비장애 아들(30)을 둔 노석원(55) 한국장애인부모회 부회장은 "어려서부터 부모들이 장애 자녀에만 매달려 있다보니 오히려 비장애 자녀들이 엇나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또 검찰과 경찰에 발달장애인 전담검사(경찰)를 두고 지자체와 경찰이 발달장애인이 학대받거나 버려지지 않았는지 조사해 매년 국회에 보고하도록 했다. 지적 능력이 취약해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감안, 경찰, 의사, 구급대 대원, 장애인시설 종사자들이 발달장애인에 대한 학대, 유기, 인신매매 사건을 인지할 경우 신고를 의무화하도록 했다. 또 발달장애인 피해 사건 조사권을 가진 발달장애인지원센터도 시군구 단위로 만들기로 했다. 2015년부터 5년간 투입될 예산은 4,168억원으로 추산됐다.
김명연 의원은 "모든 장애인 가족이 고통을 겪지만 특히 발달장애인 가족의 고통이 크다"며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돼 더 이상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