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주의'라는 말은 흔히 영화감독들에게나 붙이는 수식어였다. 감독의 시선과 호흡으로 철저하게 그의 주관이 개입된 작품이 영화이기 때문. 이제 작가주의란 표현은 영화를 넘어 TV 프로그램에도 어울릴 모양새이다. 이름만으로도 통하는 소수의 드라마 PD에 이어최근에는 예능·교양 프로그램을 만드는 PD들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그동안 TV 프로그램의 작가주의는 드라마에서 사극하면 이병훈 PD(김종학 프로덕션)와 고 김재형 PD가, 시트콤은 김병욱 PD(초록뱀미디어) 정도가 꼽혔다.
예능ㆍ교양 프로그램에서 최근 떠오른 작가주의 계열 PD들은 주로 30대~40대 젊은 층으로, 전작의 성공으로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은 자신만의 개성을 높은 시청률이나 반응으로 인정 받으면서 방송국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이들은 작품이 방영되기 전에 의례적으로 갖는 제작발표회나 기자간담회에도 얼굴을 내밀어 언론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먼저 이름을 알린 뒤 타 방송국으로 이적한 PD들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KBS에서 CJ E&M으로 옮긴 나영석, 신원호 PD가 대표적이다. 두 사람은 각각 '응답하라 1997'과 '꽃보다 할배'라는 전편이 평균 시청률 9~10%대를 오가며 전국민적인 히트를 기록한 경험도 있다.
신원호 PD는 지난 10월 tvN '응답하라, 1994'로, 나영석 PD는 지난달 시작한 tvN '꽃보다 누나'의 기자간담회를 홀로 진행했다. 여느 프로그램 같으면 출연 연예인들과 함께 나오는 게 정석이겠지만, 두 사람만은 예외였다. 혼자서 40~60여개의 언론 매체와 마주하며 프로그램을 홍보했다. 신 PD는 "시나리오 작업부터 배우 섭외, 촬영 장소 물색, 편집 등 모든 영역을 총괄하다 보니 프로그램에 대해 전반적으로 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PD가 작가와 출연진, 스태프들을 한 팀으로 통솔하고 총괄하면서 자연스럽게 PD의 색깔이 프로그램 구석구석에 배게 됐다. 그러면서 작가주의적 색채가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새롭게 변신한 KBS '해피 선데이-1박 2일'도 유호진 PD와 서수민 PD가 기자들과 만나 프로그램 홍보에 애썼다. 유 PD는 갓 입사한 신입 PD로서 '1박 2일'에서 몰래카메라를 당해 화제가 됐고, 서 PD는 침체에 빠졌던 '개그 콘서트'를 끌어올렸던 저력이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지난 1일 첫 방송은 14%대로 전편보다 6%P 이상 올랐다. '해피 선데이'의 박중민 CP는 "예능 프로그램도 PD들의 이름이 중요한 요소가 됐다. 담당 PD를 보고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시청자가 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교양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MBC는 최근 방송된 교양 프로그램을 PD들의 이름을 걸고 홍보했다. 지난 10월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방영된 '프로파일링'은 '눈물 시리즈'의 주역이었던 허태정 PD('북극의 눈물')와 김재영 PD('남극의 눈물') 등을 앞세웠다. 오는 17일 2부 방송을 앞둔 '곤충, 위대한 본능'도 '아마존의 눈물'을 만든 김진만 PD와 김정민 PD를 내세웠다. 제작발표회에서 이들은 직접 마이크를 잡고 프로그램 홍보에 앞장섰다.
지상파 방송사의 한 PD는 "전작에 성공한 PD들의 후속작은 방송사의 기대치도 높아진다. 이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누가 만든 프로그램인지가 중요해지면서, 이제 PD는 브랜드가 됐다"고 언급했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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