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는 지난 반세기 동안 눈부신 성장세를 이어왔다. 1970~80년대만 해도 자고 나면 거리에 빌딩이 새로 올라갔고, 경향 각지에 도시가 하나씩 생겨날 정도였다. 가계도 약진을 거듭했다. 70년대 초만 해도 자식들 운동화 한 켤레 사주기조차 버거웠다. 이젠 자동차 없는 집 없고, 아이들은 너무 잘 먹어 비만이 걱정스럽게 됐다. 미래엔 지금보다 더 잘 살게 되리라는 기대가 국민의 집단의식 속에 신앙처럼 자리잡았다.
▲ 하지만 나라든 도시든 가계든, 번영은 결코 무한하지 않다.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초만 해도 세계 10대 부국으로 꼽혔다. 남한의 28배나 되는 광활한 옥토에서 식량과 목축으로 부를 일궜다. 하지만 1950년대 이래 개혁 실패와 경제 불안이 이어지면서 급속히 쇠퇴했다. 엊그제 파산절차에 들어간 미국 디트로이트 역시 1950년대만 해도 세계 최대의 자동차산업 중심지로 번영을 구가했다. 하지만 불과 50여년 만에 쇠락한 공장시설과 함께 약 20조원이나 되는 지자체 빚을 안고 좌초한 셈이다.
▲ 가계소득 수준이 점점 악화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1988년부터 지난해까지 미국 국내총생산(GDP)은 약 40% 성장했다. 하지만 지난해 평균 가계소득은 5만1,017달러로 88년 수준으로 후퇴했다. 실질소득은 오히려 악화한 셈이다. 신자유주의체제의 득세에 따라 소득분배가 왜곡된 탓이 크다. 스위스에선 최근 서민 가정경제 악화에 대한 반발로 기업 내 연봉 격차를 최대 12배 이내로 제한하자는 '1대 12법'까지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 통계청이 엊그제 발표한 '2013년 사회조사' 결과, 소득이 1년 전보다 늘었다는 응답은 16.6%인 반면, 같거나 오히려 줄었다는 응답이 83.3%에 달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할 때 소득이 같다는 건 실질소득의 감소를 의미하므로, 우리 국민 대다수가 소득이 줄었다고 인식한다는 얘기다. 이런 인식은 스스로 경제적 '하층민'이라고 생각하는 가구주 비중이 역대 최고치인 46.7%까지 치솟는 결과로 이어졌다. 어느새 '잘 살아 보세' 신앙까지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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