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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12월 6일] 진정한 리더십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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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12월 6일] 진정한 리더십이란

입력
2013.12.0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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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린보이"를 제작하던 2008년 어느 날 제작진의 사소한 실수가 있었다. 난 의도적으로 소위 군기를 잡겠다는 의도로 촬영을 중단시켰다. 마치 제작자의 권위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 내가 이 영화현장의 최고책임자라는걸 모든 배우와 스텝들에게 각인시키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러나 내 의도와는 달리 영화현장에서 점차 '왕따'가 되는 것을 느꼈다. 아무도 나와 대화하려 하지 않았고 식사도 하지 않았다. 제작진들은 그저 영화제작자로서의 나의 위치만 인정하고는 행적적인 보고 외에는 아무도 나와 대화하지 않았다. 나는 점점 외로움에 휩싸였다.

2012년 런던한국영화제에서 '광해 왕이 된 남자'가 폐막작으로 선정돼 런던에 가게 됐다. 주연배우인 이병헌은 마침 런던에서 '레드2'라는 헐리웃 작품을 촬영 중이어서 겸사겸사 런던을 방문했다.

우리영화가 상영되던 날 부르스 윌리스와 존 말코비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헬렌 미렌, 영화 감독 딘 패리소트, 제작자 로렌조 디 보나벤츄라 등이 참석해주었다. 거물급 헐리웃 배우와 감독을 보는 것도 영광이었지만 미국의 유명제작자인 로렌조 디 보나벤츄라를 만난다는 게 나에겐 더 흥분되는 일이었다. 로렌조 디 보나벤츄라는 '트렌스포머'시리즈와 '지아이조'시리즈, '레드' 시리즈 등을 제작한 헐리웃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제작자이기 때문이다.

영화상영이 끝나고 그들과 칵테일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로렌조 디 보나벤추라가 런던에서 현재 촬영중인 자신의 영화'레드2'현장으로 나를 초대했다. 난 가슴이 설??? 같은 프로듀서로서 세계최고 수준의 영화 촬영 현장을 보게 된다는 생각에 잠도 이루지 못했다.

부푼 기대감을 갖고 런던의 한 호텔 촬영장을 방문했다. 그날 이병헌과 존 말코비치, 부르스 윌리스가 한참 촬영 중이었지만 나의 관심은 오로지 현장에서 로렌조가 어떤 모습으로 있을 지가 가장 궁금했다. 최고급 수트를 입고 금장이 달린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보면서 우아하게 탄산수를 마시며 현장을 지휘하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촬영장에 갔지만 로렌조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난 점점 몸이 달아서 스텝에게 로렌조가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현장스텝 한 명이 로비를 돌아가면 로렌조가 있다고 이야기해줬다. 난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곳엔 허름한 점퍼에 청바지를 입고 있는 중년의 배 나온 아저씨가 서 있었다.

그는 제작부의 막내스텝에게 "헤이 존, 너 어제 촬영 없는 날 데이트한다더니 어땠어? 행복했어?"라며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단역배우에게 "야 오늘 식사는 내가 특별히 트리플A급 스테이크를 준비했어. 그러니 기분 좋게 연기하고 맛나게 밥 먹고 가, 뭐 특별히 불편한 건 없어?"하면서 그들을 격려했다.

난 충격이었다. 자가용비행기를 가지고 수 천억원이 넘는 영화를 제작하는 거물 제작자가 현장에서 여느 스텝과 전혀 다름이 없는 모습으로 배우 등를 대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스텝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에 존경과 권위를 인정하는 모습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에게 물었다. "현장에서 무슨 일을 하나요?" 그러자 벤츄라는 망설임 없이 "난 현장에서 가장 많은 농담을 하는 사람이죠"라고 답했다. 난 그 말을 듣는 순간 잠시 멍해졌다.

권위라는 것이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낸다고 세워 지는 게 아니라 자기와 일하는 동료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며 그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때 세워지는 것이라는걸 비로소 깨달았다. 로렌조 디 보나벤츄라는 '현장이 행복해야 영화가 잘된다'라는 너무나 당연한 명제를 일깨워 준 것이다.

어떤 유명 야구감독이 9회말 역전의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직접 마운드로 올라갔다. 투수와 몇 마디 나누고 벤치에 돌아왔고 그 투수는 위기상황을 잘 넘겼다. 경기가 끝나고 해설자가 물었다, "감독님 아까 투수에게 무슨 작전을 지시한 겁니까?" 그러자 감독은 "작전은 무슨 작전… 그냥 투수한테 '야 너 잘하고 있어, 빨리 끝내고 맥주나 마시자' 그랬지."라고 했다. 리더십은 이런 거다, 진정한 리더십은 동료를 신뢰하고 사랑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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