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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12월 6일] '그림'이라고 여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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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12월 6일] '그림'이라고 여긴 사진

입력
2013.12.0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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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열이 사진이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 하십니다. 저는 반대로…한열이 저 사진이 신문에나 어디에나 너무도 많이 나왔는데, 저게 내 아들 한열이가 아니고, (그 사진을) 한 장의 그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지 내가 살아지고…그랬습니다…"

지난 화요일 갤러리 류가헌에서 정태원의 사진집 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오랫동안 해외 통신사 외신기자로 활동해 온 저자의 첫 사진집 출판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1987년 당시 영국 뉴스통신사 로이터의 사진기자였던 정태원은 6월 9일,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한국현대사에서도 잊히지 않을 '결정적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학생으로 군사정권을 규탄하는 교내 시위에 참가했다가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이한열 군을 학우가 부축하고 있는 장면이다.

사진 속에서 피를 흘리던 스물두 살 청년은 결국 사망하였다. 독재정권의 폭압적인 잔인성을 보여줌으로써 공분을 사게 한 이 사진은 곧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고, 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 우리나라 민주화의 대장정을 겪지 않은 세대들에게조차도 낯익은 이미지로 매김 되었다.

바로 그 사진이 담긴 사진집의 출판기념회에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참석하여 출판을 축하하러 모인 저자의 지인들과 참석객들 앞에 선 것이다. 어머니의 뒤로는 예의 이한열 군 사진이 현수막에 커다랗게 인쇄되어 배경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 역사와 다른 사람들에게는 민주화에 기여한 사진으로서 의미를 지니지만, 어머니에게는 '한 장의 그림'이라고 생각지 않으면 차마 견딜 수 없었던 사진.

숙연해진 저물녘의 류가헌 마당에 이한열 열사 어머니의 낮은 목소리가 다시금 조용히 번졌다.

"그때 세상은 민주화 과정에서 희생자들이 생기면 시신을 가족들의 동의도 없이 아무데나 묻는 그런 세상이었답니다…어디로 끄집고 가버렸어도 어디 가 있느냐고 물어보지도 못하는 그런 세상이었습니다. 외신기자였던 정 기자님이, 우리 한열이를 한 치도 틀림없이 사진을 찍어서, 그날 밤 텔레비전에 이한열이가 나왔습니다. 나는 하늘이 무너져버렸고 아무것도 안보였지만, 그때 정 선생이 우리 한열이를 찍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어디선가 살아있어서, 오겠지 하면서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곁에 서 있는, 이제는 칠순을 넘긴 노 사진기자 '정 기자님'을 향해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한 치도 틀림없이' 찍어서 자식의 생사여부를 확연케 해준 데 대한, 자식의 죽음이라는 허망을 민주화의 거름이라는 희망으로 바꾸어준 데 대한 감사였다.

어느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아들은, 역사의 기록자로서 현장의 중심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한 사진가에 의해 기록되었고, 그렇게 사진으로 되살아나서 도처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26년이 지난 지금에도 어머니의 뒤에 있는 것이다.

"어미로서는 저 자식의 험악한 사진이나마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주기를 바랍니다"라는 것으로, 이한열 열사 어머니는 말을 끝맺었다.

두 주째 눈빛출판사 창립 25주년 기념도서전시인 전을 이어가면서 열사의 어머니이기 이전에 자식을 앞세우고 힘겹게 생을 지나왔을 이 노모의 바람이 이루어지고 앞으로도 이루어져 갈 것임을 믿게 된다. 25주년 기념 출판물로 과 같은 사진집을 발행하는 눈빛출판사가 있고, 그 '험악한' 사진이 표지인 사진집을 사서 총총히 들고 가는 관람객들이 있으므로.

박미경 갤러리 류가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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