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칼럼 36.5°/12월 6일] 연극인들의 겨울나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칼럼 36.5°/12월 6일] 연극인들의 겨울나기

입력
2013.12.05 11:29
0 0

연극을 볼 때와 뮤지컬을 관람할 때, 마음이 다르다. 연말 대목을 맞아 수백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대형 뮤지컬 라이선스 작품이 올려진 서울 중심가 극장들을 들어서자면 솔직히 가뭄 난 동네 부잣집 잔치가 떠올라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요즘은 주부 사교모임 뒤풀이로, '갑'에게 보내는 선물로 뮤지컬 티켓이 인기를 끌고 있는 탓에 대형 뮤지컬 제작사들은 대체로 연말연시 표를 일찌감치 팔아 치웠다고 한다. 비록 어떤 제작자도 나서서 "이번 공연으로 이득을 봤다"고 선뜻 말하진 않지만, 연예계를 대표하는 스타들이 총동원된 뮤지컬 극장이 잘 차려입은 관객으로 북적거리는 모습을 보면 "이들은 그나마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앞선다. 난방이 잘 되어 외투를 걸치기조차 어려운 뮤지컬 공연장은 한파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연극계의 연말연시는 상대적으로 매섭고 춥다. 웬만한 대형 공연장은 티켓값 10만원을 훌쩍 넘는 고가의 뮤지컬들이 선점했다. "브로드웨이를 통째로 옮겨온 것 같다"는 말이 나올 만큼 흥행 뮤지컬들이 기치를 줄줄이 올린 탓에 연극인들은 자체적으로 공연을 속속 뒤로 미뤘을 정도다. 몇 개 공공 극장의 대형 연극들을 제외하면 티켓구매 인터넷 사이트에서 괜찮은 연극을 찾기가 지난 11월보다 쉽지 않다. 굳이 상대적 박탈감이 심해지는 연말이 아니라도 연극인들은 힘든 계절을 보내고 있음이 분명하다. 대학로 공연장 취재를 다니다 보면 공연을 몇십 분 앞두고 배우가 무대를 청소하거나 끼닛거리를 사러 극장 밖으로 나가는 일을 종종 본다. 한기가 가득한 분장실에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화장과 머리 손질을 하는 젊은 배우들이 혹시나 추위를 관객의 무관심으로 치환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연극인들의 혹독한 겨울이 단지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공연예술의 자본화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관객 편중 현상이 시장을 흔들었기 때문만도 아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정부와 정치권, 이른바 힘 있는 자들의 관심 부족이 연극계의 동토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연극계를 대표하는 국립극단의 연말 창작극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은 당초 재개관을 앞둔 국립극장의 달오름극장에서 막을 올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국립극단 전용 극장으로 사용될 예정이던 달오름극장 공사가 턱없이 늦어지면서 급히 백성희장민호극장으로 장소를 변경했다. 이 극장은 여유 공간이 부족하고 난방이 잘되지 않아 대기 중인 관객들이 추위를 피하려고 다른 시설을 찾아 나서야 할 정도다. 공연 중에도 대다수가 외투를 벗지 못했으니 무대에 선 배우들은 오죽했으랴. 한 공연계 인사는 "조달청이 공사를 따갈 건설회사를 기계적으로 뽑아내 벌어진 일이다"며 "일반 건물이 아닌 공연시설이란 점을 고려해 입찰을 했다면 기일을 맞췄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극단은 지난달 초 손진책 전임 예술감독의 임기가 끝났는데도 아직 후임이 정해지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 문화계에선 손씨가 재임 중 정치적 메시지가 강한 연극 '개구리'를 국립극단 무대에 올린 뒤 정부가 후임 감독 인선 과정을 강화하면서 비롯된 일이라는 말이 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현재 복수의 추천 인사들이 윗선에 보고되었지만 이른 시일 안에 후임이 결정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하고 있다. 예술감독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국립극단은 내년 공연 일정을 확정하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립극단의 사정을 잘 아는 한 연극인은 "정치권의 말을 잘 듣는 인사를 찾으려다 보니 일이 늦어지고 있다"며 "전용 극장 개관이 차일피일 연기된 마당에 각종 지원도 줄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고 전했다. 지난 10월 문체부 간부 직원의 '인사 위협'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심재찬 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의 후임도 역시 공석으로 남겨진 채 그대로다. 연극인들의 겨울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양홍주 문화부 차장대우 yangh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