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크리스마스는 더 이상 특정 종교의 기념일이 아니다. 고현학(modernologyㆍ고고학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현대의 풍속세태를 조사ㆍ기록하는 학문)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이제 크리스마스는 고도자본주의라는 냉혹하고 각박한 세계에 내던져진 이 땅의 모든 성인들에게 유일하게 판타지가 허용되는 날로 그 정의가 바뀌어야 한다. 일 년에 단 하루 정도는 사랑하는 이들과 따뜻한 가슴을 나누며 보내야 한다는, 이제는 거의 강박이 되어버린 판타지. 그래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도 그날만큼은 교회 대신 유명 맛집과 흥성스러운 거리의 인파 속으로 기꺼이 섞여 든다.
하지만 이 판타지는 구세군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거리에서만 실현될 수 있는 것도, 힙 플레이스에서만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큰 돈 들이지 않고도 따뜻하고 흥겹게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바로 '크리스마스 홈파티'다. 홈파티? 최소 40평대 아파트에 빌레로이 앤 보흐의 크리스마스 딜라이트 식기 세트 정도는 있어야 가능한 것 아니냐고? 15년차 경력의 실력파 푸드스타일리스트인 박소영(40) 푸드앤테이블 대표에게 SOS를 쳤다. 집 자랑, 그릇 자랑 말고, 친구, 가족, 연인끼리, 낭만적이면서도 유쾌한 크리스마스 저녁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며칠 후 그에게서 다음과 같은 답신이 왔다.
친구들을 위한 테이블 세팅
"크리스마스 장식은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의 따뜻하고 편안한, 가정적인 스타일이 특징이에요.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몇 가지 아이템과 색깔만 갖추면 쉽게 분위기를 낼 수 있죠.
친구들끼리는 요즘 유행하는 아웃도어 캠핑 스타일로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겨봐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물론 실내에서! 집이 크거나 화려하지 않아도 상관 없어요. 88만원세대라고 해서 홈파티를 못할 이유도 없죠. 담요와 와인박스 몇 개만 있어도 멋진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거든요.
일단 거실이나 베란다 바닥에 따뜻한 느낌의 담요를 깔고, 와인박스나 과일박스 두어 개를 엎어서 테이블로 사용해요. 그 주위를 통나무와 사슴, 선물박스 같은 크리스마스 장식들로 연출하고, 통나무 위에는 포트럭(Potluckㆍ각자 하나씩 가지고 온 음식)으로 가지고 온 접시들을 올려 놓아요. 자유롭게 가져다 먹는 뷔페로 진행하는 거죠. 이때 주의할 점은 초를 놓아둘 때, 발에 차이거나 몸에 부딪혀 초가 넘어지지 않도록 하는 거예요. 꼭 유리 볼이나 병 안에 넣어 올려두는 것이 좋고, 없을 때는 초 모양의 캔들 랜턴을 이용해서 넘어져도 위험하지 않도록 세팅을 해 주는 것이 좋아요.
이 스타일의 세팅에서는 장식용 소품들을 선택할 때 내추럴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것들로 골라야 해요. 솔방울이나 나뭇잎 등을 주워서 간단한 리스(wreathㆍ둥근 고리 형태의 장식물)를 직접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죠?
좀 더 격식 있는 스타일을 원한다면 모던한 이미지의 '블랙&레드'를 추천해요. 검정색의 테이블보에 펄이 들어간 얇은 시스루 천을 한 번 더 깔아 파티 분위기를 내고요, 그 위에 심플한 느낌의 줄무늬 접시와 모던한 디자인의 샴페인 잔, 와인 잔을 놓는 거죠. 테이블 중앙에 놓는 센터피스는 작은 사각유리잔에 정열적인 빨간색의 장미 잎을 넣어 장식하고, 몇 개의 잎은 바닥에 떨어뜨려 로맨틱한 분위기를 내보았어요.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맞춤 테이블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접시 위에 깃털로 장식한 네임카드를 올려 놓는 것으로 테이블을 완성했어요."
연인들을 위한 테이블 세팅
"크리스마스 기본 컬러는 잘 알다시피 빨강과 초록, 흰색과 금색이죠. 빨강은 그리스도의 피, 초록은 영원한 생명, 흰색은 죄 사함과 순결, 금색은 동방박사의 별을 의미해요. 이 색들을 쓰면 누구라도 쉽게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어요. 하지만 틀에 박힌 크리스마스 이미지라는 느낌도 좀 드는 게 사실이죠. 왜, 연인과는 좀 더 특별한 파티 분위기를 내고 싶잖아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느낌의 크리스마스 테이블을 연출하기 위해 은색와 흰색, 무채색에 가까운 그린색을 골라봤어요. 마치 드레스 자락을 연상시키도록 주름을 잡은 테이블보에 은색 도금이 들어간 흰 접시를 깔고, 은도금의 커트러리(포크, 나이프, 스푼)를 놓았죠. 크리스마스 세팅에서 초를 사용할 때는 사순절을 기념하기 위해 4개를 써요. 대신 촛대를 사슴 모양으로 2개, 별 모양의 크리스탈 촛대 2개를 사용해 변화를 주었죠. 분위기를 내기 위해 테이블에 올려두는 장식품을 어태치먼트라고 하는데요, 은도금 손잡이가 달린 작은 종을 골라봤어요. 딸랑딸랑 '실버벨' 소리가 들리는 듯하죠?
보다 로맨틱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원한다면 '퍼플&실버'로 기본 색조를 정하는 게 좋겠네요. 크리스마스의 대표적인 장식인 리스로 냅킨 링을 대신하고, 센터피스는 둥근 모양의 흰털을 깔아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연출하는 거예요. 털의 가운데에 거울을 깔아 촛불의 빛이 은은하게 비춰 더욱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도록 했어요. 어태치먼트로는 눈썰매를 끄는 사슴에 작은 선물을 하나씩 담아, 디저트를 먹으며 풀어 볼 수 있게 연출했죠.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더욱 부각되도록 말이죠."
가족을 위한 테이블 세팅
"서양에서는 크리스마스가 흩어진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명절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실 가족 모임은 흔치가 않죠. 하지만 요즘은 점점 가족 파티가 많아지는 추세예요. 특히 어린 아이들이 있어 바깥 나들이가 여의치 않은 젊은 부부들이 홈파티를 선호해요.
가족 모임인 만큼 전체적인 색감은 크리스마스 기본 컬러인 적, 백, 녹, 금색으로 연출하는 게 좋아요. 세팅 스타일도 캐주얼하고 편안한 분위기로 초점을 맞추고요. 일단 붉은색의 테이블보를 깝니다. 그리고 그 위에 금색의 눈꽃 모양이 프린트된 러너(테이블보 위에 얹는 긴 장식보)를 얹죠. 센터피스로는 소금을 뿌려 흰 눈을 표현했고(아이들이 막 찍어먹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그 옆에 상록수 모양의 서로 크기가 다른 작은 나무와 포인세티아 꽃, 이파리로 포인트를 주었어요. 식기는 리스를 연상케 하는 나무로 된 둥근 접시(플레이스 플레이트)를 제일 밑에 깔고 그 위에 트리 모양이 프린트된 접시를 올려 센터피스와의 연관성을 살렸죠. 물잔은 같은 녹색으로 포인트를 주고, 부부가 함께 축배를 할 수 있도록 샴페인 잔도 같이 세팅 했어요. 자, 이제 크리스마스 홈파티를 즐길 준비가 다 되었네요. 불황이나 긴축 같은 단어는 잠시 잊기로 해요. 그리고 모두에게 따뜻한 마음을 담아, 메리 크리스마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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