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로 인한 갈등의 실마리를 모색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의 방중이 오히려 양국 관계를 더 껄끄럽게 만들면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과 중국의 해양 강국 건설 정책이 정면 충돌하며 미중 신냉전 시대에 들어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양국의 기본적 우호 관계가 파국을 맞진 않을 것이라는 게 외교가의 시각이다.
1박2일 일정으로 4일 중국에 도착한 바이든 부통령은 첫 일정부터 중국 지도부를 당혹스럽게 했다. 그는 주중 미국대사관을 찾아 미국 비자 수속을 밟고 있던 중국 젊은이들에게 정부에 도전할 것을 권고했다. "혁신은 자유를 숨쉴 때만 가능하다"고도 했다. 이는 중국의 억압적 체제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민감한 발언이다. 비록 미국의 영토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는 대사관 안에서 한 말이라고 해도 해외 순방에서 할 언급은 아니라는 게 외교가의 지적이다.
바이든 부통령의 폭발성 발언에 중국은 한 때 비상이 걸렸다. 중국 언론들이 이날 그의 공항 도착 소식만을 전한 뒤 이후의 일정을 전혀 보도하지 않은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통상 시 주석이 외국 귀빈을 만난 소식은 CCTV의 저녁 7시 뉴스에 첫 기사로 보도되나 이날은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실제로 웨이보(微博ㆍ중국판 트위터)에 오른 바이든 부통령의 대사관 발언 동영상도 이후 삭제됐다.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바이든 부통령의 이날 면담도 격론이 오가며 의견 조율이 힘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중국의 일방적인 방공식별구역 선포는 지역 안정을 해치는 것이며 미국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중국은 오히려 방공식별구역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신형대국관계 구축을 내세웠다. 시 주석은 지난 6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났을 때 "충돌하지 않고 대립하지 않으면서 상대의 핵심 이익과 관심사를 존중하는 협력과 공동 번영의 신형대국관계를 만들자"고 요구했다. 한 국제문제 전문가는 "중국은 신형대국관계를 얘기할 때 태평양이 미중 양국이 함께 번영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넓다는 점을 강조한다"며 "이는 태평양을 반으로 나눠 갖자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세계 질서를 미중 두 나라가 다시 짜자는 중국의 제안을 미국은 받아들일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양국 모두 파국을 원하지 않는 만큼 결국 대화와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원칙에는 공감대를 형성했을 것으로 파악된다. 바이든 부통령도 이미 중일 간 위기관리 체제 구성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고 중국도 방공식별구역 중첩 문제에 대해선 대화의 문을 열어 놓고 있는 상황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과 중국은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상대국"이라며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를 잘 관리하며 관계를 더 공고히 해 가자는 데 합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방공식별구역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중국의 입장을 감안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바이든 부통령의 방중은 2011년 8월 당시 시 부주석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한 데 이어 두번째다. 시 부주석은 그때 쓰촨(四川)까지 바이든 부통령을 동행했다. 이에 지난해 2월 시 부주석이 방미했을 때는 바이든 부통령이 거의 전 일정을 함께 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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