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5호선과 분당선, 전철 중앙선이 지나는 서울 행당동 왕십리역. 바닥에 떨어진 지갑을 주웠다면 역무실에 신고해야 할 텐데 어디로 전화를 걸어야 할까. 답은 지갑을 발견한 위치에 따라 다르다. 역은 하나지만 구역별로 담당하는 조직이 다르기 때문이다.
네 개 노선이 교차하는 왕십리역은 운영주체가 공기업 세 곳인데 업체별로 각각 역장과 부역장까지 따로 두고 있다. 이들을 포함한 직원은 서울메트로(2호선) 14명, 서울도시철도공사(5호선) 13명, 코레일(중앙선ㆍ분당선) 16명에 달한다. 문제는 이런 역이 한두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 공사의 누적 부채 합계가 18조원에 달하는데도 역 한 곳을 여러 기업이 중복 관리하면서 '공기업 방만 경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4일 서울메트로 등에 따르면 서로 다른 업체가 운영하는 노선이 교차하는 환승역은 모두 37곳. 이 가운데 가락시장역 등 4곳을 제외한 33곳은 역장이 2명 이상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공기업들은 "같은 건물을 쓰지만 운영주체가 다르니 당연히 역장과 직원도 업체별로 따로 둔다"고 주장했다.
환승역에 업체별로 역장을 두는 것은 이미 오래 전 방만 경영으로 지적됐던 부분이다. 감사원은 1997년 철도청(현 코레일) 서울지하철공사(현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 등 수도권 지하철 운용실태 특별감사를 벌여 왕십리역, 종로3가역 등 9개 환승역의 중복 관리인력을 줄이라고 요구했다. 당시 감사원은 "부채 합계가 4조5,000억원이 넘고 적자가 심해 경상경비를 줄이는 것이 급선무"라며 "3개 기관이 협의해 역장을 1명으로 줄이고 중복 관리인력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코레일은 역장을 그대로 뒀지만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이듬해 7월 이들 역의 역장을 1명으로 통합했다. 그러나 두 회사는 8년 만인 2006년 2월 슬그머니 복수 역장제를 부활시켰다. 서울도시철도공사 관계자는 "역사 설비와 시스템 차이에 따른 관리 효율성 저하, 타 기관 직원에 대한 지휘통솔의 현실적 어려움 등으로 통합 역장제를 폐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 공사의 누적 부채는 지난해 기준으로 코레일 14조3,210억원, 서울메트로 3조3,035억원, 도시철도공사 1조433억원으로 하루 이자만 10억여원에 달해 복수역장제는커녕 허리띠를 졸라매도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는 "역 한 곳에 역장이 세 명이라니 황당하다"며 "공기업이라 비용 절감, 수익 창출에 대한 압박을 일반 기업보다 덜 받아 경영을 방만하게 하고, 이에 따른 손실이 발생하면 결국 세금을 끌어다 메우는 행태를 반복한다"고 말했다.
아예 이들 공사를 합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계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최근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관제소나 시설 유지ㆍ보수, 콜센터 등 공통업무를 통합 운영하고, 향후에는 법인까지 합병해야 비효율 요인을 줄일 수 있다'는 내용의 용역 보고서를 서울시에 제출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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