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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장성택 실각] 김일성 사후 '심화조 사건' 2만5000명 숙청… 장성택이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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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장성택 실각] 김일성 사후 '심화조 사건' 2만5000명 숙청… 장성택이 주도

입력
2013.12.0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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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이 2인자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사실상 숙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과거 북한 최고 권력자들의 체제 구축용 정적 제거 사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정은 체제에서도 장성택 숙청이 처음은 아니다. 김 1위원장은 앞서 지난해 7월 자신의 후견인 역할을 하던 군부실세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을 숙청했다. 리 참모장은 2010년 9월 군부의 1인자로 급부상했지만 이후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과의 세력싸움에서 밀리면서 제거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역시 김 1위원장 후계자 지명 이후 승승장구했지만 지난해 3월 이후 권력무대에서 사라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우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3년 뒤인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소위'심화조 사건'으로 알려진 숙청 작업을 통해 당 간부와 가족 등 2만 5,000여명을 제거하고 권력기반을 다졌다. 북한 사회안전성(현 인민보안부) 내에 '간첩색출'명목으로 만들어진 심화조의 활약으로 서관희 당 중앙위 농업담당 비서와 문성술 당 조직지도부 본부당 담당 책임비서와 서윤석 평안남도 당 책임비서 등 수천명의 당 간부가 숙청됐고 가족들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위원장은 이후 심화조에 대한 주민들의 여론이 좋지 않자 이 사건에 관여했던 6,000여명을 다시 숙청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대목은 당시 심화조 사건을 주도했던 인사 중 한 명이 바로 이번에 실각된 장 부위원장이라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1974년 후계자 지명 직후에도 계모 김성애와 김평일 등 이복형제들을 곁가지로 몰아 정치무대에서 몰아냈고, 삼촌이자 권력 2인자였던 김영주 당 중앙위 조직비서 겸 조직지도부장을 제거했다.

김일성 주석의 경우 6ㆍ25 전쟁 이후 남로당계인 박헌영 제거를 시작으로 1950년대 후반에는 연안파와 소련파를, 1960년대 후반에는 갑산파를 차례로 숙청했다. 유일영도체계 완성기인 1968년에는 청와대 기습 미수와 울진ㆍ삼척 무장공비 침투 실패로 정치적 위기에 처하자 공작을 주도했던 김창봉 당시 민족보위상(현재 인민무력부장)과 허봉학 인민군 총정치국장 등 대남 및 군사 실세들을 숙청함으로써 1인 지배체제를 완성했다.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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