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 학생모집 기간에는 '지옥 출장'을 가는 기분입니다. 교사와 학생이 수업까지 빠져가면서 홍보하러 다니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닌가요?"
서울 강북 지역의 한 특성화고는 지난달 전체 학년이 2주 동안 4교시까지만 단축수업을 했다. 수업을 해야 할 교사들이 중학교로 학생 유치활동을 나간 탓이다. 이 학교는 지난 10월 모든 교사가 중학교 2~3개씩을 맡아 홍보를 벌인 데 더해 11월에는 교사 20여명으로 아예 팀을 꾸려 2~3주간 매일 집중홍보를 했다. 이 학교의 A 교사는 "교사가 수업을 방치한 채 홍보를 나간다는 것, 학교 홍보를 교사와 학생들이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면서 "중학교 3학년 담임교사들을 만나 '저희 학교에 좋은 아이들을 많이 보내달라' 사정을 하는데 교사로서 할 짓이 아니다"라고 푸념했다.
특성화고 신입생 유치에 교사와 학생들이 동원되면서 일선 학교의 수업 파행이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입생 모집기간이 코앞으로 다가오는 11월이면 특성화고 대부분은 50분 수업을 30~40분으로 단축하거나 아예 오전 수업만 진행할 정도다. 빼먹은 수업에 대해서는 보강을 진행한다고 하지만 말뿐인 경우가 허다하다. 서울의 또 다른 특성화고 B 교사는 "많을 때는 절반 이상의 교사가 홍보를 나가는데 남은 교사만으론 보강이 불가능한데다 상당수 교실은 홍보도우미로 불려나가 학생도 없다"며 "11월의 특성화고 교실은 난장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침이나 점심 때 학교 앞에 와보면 가방 메고 홍보하러 가는 애들이 줄줄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홍보를 잘한다 싶은 학생은 1~2주를 수업에 아예 못 들어오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홍보도우미'라는 이름으로 동원되는 학생들의 수업권 침해도 심각했다. 홍보도우미 경험이 있는 은평구의 한 특성화고 3학년 학생은 "10월 말에서 11월 둘째 주까지 일주일에 2~3번씩 홍보를 나갔는데 먼 지역의 학교를 갔을 때는 하루에 수업을 2,3시간밖에 못 듣기도 했다"며 "12월 초 기말고사를 봐야 하는데 수업을 빠져 진도를 못 따라가니까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권기승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실업위원장(성수공고)은 "4,5년 전에는 미달이 나서 정원을 채우기 위해 교사들이 열심히 홍보를 나갔고, 정원이 차면서부터는 성적 좋은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많이 나가고 있다"며 "중학교 때 진로 지도가 제대로 돼 소질과 꿈을 찾는다면 지금처럼 특성화고에서 홍보를 나갈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경쟁 과열로 인한 수업 결손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도 교육당국은 눈을 감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수업시간표를 바꿔서 홍보활동을 할 뿐 수업을 결손하면서까지 나가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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