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실각한 것으로 알려진 장성택(67)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김정은 체제의 2인자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한 북한 권부의 핵심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 노동당 비서의 남편이란 지위로 권력 핵심부에 오른 장성택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고모부로서 김정은 체제를 탄생시킨 산파였다.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사로 김정은 체제가 서둘러 출범할 당시 28세의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의지한 이가 '핏줄'인 장성택 김경희 부부였다. 장성택은 김 위원장 영결식 당시 김정은 제1위원장 바로 뒤에서 영구차 행렬을 호위하는 모습을 보이며 '북한 내 권력 2인자'임을 과시했다.
장성택은 앞서 김 위원장이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부터 사실상 2인자의 위치에 올랐고 2009년에는 김 위원장에게 김정은 후계자 낙점을 직접 건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은 후계 구축과 권력 승계 과정을 총괄하는 후견인의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이 같은 위상으로 김정은 체제 출범 초기에는 "장성택 김경희 부부가 섭정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당시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장성택은 김정은의 멘토이자 경쟁자"라고 지적한 대로, 그 같은 영향력이 결국 실각의 요인이 된 셈이다.
장성택이 북한 권력 2인자로까지 발돋움한 힘의 원천은 무엇보다 김경희 때문이다. 김일성종합대 재학 중 김경희와 교제한 장성택은 김일성 주석의 반대로 원산으로 쫓겨나기도 했으나 김경희의 계속된 구애로 1969년 함께 모스크바 유학 길에 올랐다. 72년 김경희와의 결혼에 성공한 그는 이후 권력 핵심인 당 중앙위원회에서 승승장구했다. 특히 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후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핵심 실세로 부상했다. 김 위원장이 "김경희는 나의 분신"이라고 말할 정도로 여동생에 대한 신뢰가 컸기 때문이다.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그는 그러나 2004년 '권력욕에 의한 분파 행위'를 이유로 좌천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당시 그의 실각은 후계 구도를 둘러싼 내부 '암투설' 때문으로 알려졌으며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의 견제설 등 다양한 관측이 나왔다. 당시 장성택 김경희 부부는 김정남과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성택은 고영희가 사망한 후인 2006년 재기해 권력의 중심에 다시 올랐다. 이 때도 김경희가 김 위원장을 설득한 것으로 보인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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