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눈을 감고 시각장애 마림비스트 전경호씨가 연주하는 경쾌한 마림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굳이 눈을 감지 않아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다. 소리에 모든 감각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단순히 음악만 듣는 게 아니다. 어둠 속 선율은 시각장애인들의 마음까지 실어 나른다.
이달 31일, 세계 최초로 시각장애인을 위해 기획된 암전(暗轉)콘서트에서 펼쳐질 모습이다. 이름하여 'Touch your Heart'. 비장애인들도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함께 콘서트를 즐기면서 그들을 편견 없이 이해하자는 취지다.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이번 공연은 유명 공연기획사에서 여는 콘서트가 아니다. 마케팅을 좋아하는 13명의 대학생들이 힘을 모아 준비하고 있다. 대학생 사회적 기업을 표방하는 '엔젤스 브랜딩' 소속 학생들이다.
공연 기획은 이렇게 시작됐다. 올해 7월 점자 명함 활성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공연기획 전공인 이선옥(22ㆍ한국예술종합학교3)씨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콘서트를 열고, 점자 명함을 변형해 콘서트 티켓으로 활용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리고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의미 있는 변화를 위해 우리부터 실천하자'는 생각이, 어쩌면 다소 거창해 보이는 콘서트 기획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홍보팀장을 맡고 있는 홍완표(25ㆍ경희대4)씨는 "우리의 활동은 일종의 사회운동"이라며 "과거엔 사회를 바꾸기 위해 화염병을 던졌다면, 이제는 SNS를 활용한 마케팅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돈도, 인맥도, 경험도 부족한 이들에게 콘서트 기획은 험난한 여정이었다. 이씨는 "언제나 '행동' 속에 답이 있었다"며 "전주세계소리축제 등 현장에 찾아가 조언을 구했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과정에서 새로운 용기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자금 마련도 쉽지 않았다. 소셜펀딩을 진행했지만 참여하는 것은 소수의 지인들 뿐이었다. 홍씨는 "우리가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번 콘서트를 알리고 동참을 유도하는 것이었는데, 한계에 다다르니 답답하고 조급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우연한 기회에 홍씨는 수많은 트위터 팔로워를 가진 박원순 서울시장이 개인적으로 SNS를 통해 의미 있는 활동을 홍보해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한 홍씨는 이 프로젝트의 홍보를 신청했다. 결과는 좋았다. 지난달 중순 박 시장의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트위터로 이 프로젝트가 알려지자 열흘도 안돼 200여명이 소셜펀딩에 동참했다.
이들의 콘서트 기획 과정은 한 피디의 도움을 받아 다큐멘터리 형식의 캠페인 광고로도 제작되고 있다. 완성된 광고는 내년 칸 국제광고제에 출품할 계획이다. 물론 엔딩크레딧에는 소셜펀딩을 비롯해 공연 준비에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이름을 전부 넣을 예정이다. 홍씨는 "우리가 준비하는 건 일회성 콘서트가 아니라 일종의 캠페인"이라며 "한 사람 한 사람의 도움이 큰 변화로 이어진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 뚜렷한 결과물이 나온 건 아니지만 이들은 자신감을 드러냈고, 입을 모아 실천의 힘을 강조했다. "하면 된다, 정말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안 해서 안 되는 거지 하면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무브먼트(운동)를 통해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졌으면 좋겠어요."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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