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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애국시민을 위한 엘레지

입력
2013.12.0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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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문화부 부장대우 bskim@hk.co.kr

한 인터넷매체에서 만든 ‘종북 셀프 테스트’라는 자가진단표가 화제인가 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종북주의에 물들어 있을지 모를 사람들을 위해 ‘애국시민일까요 아니면 종북주의자일까요’를 판별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표다. ‘예’ ‘아니오’로 답해 금세 자신의 ‘정체’를 판별할 수 있는 이 테스트의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당신은 통합진보당 당원인가? 희망버스를 타본 적이 있는가? 밀양의 송전탑 공사는 재검토되어야 하는가? 촛불시위에 참가한 적이 있는가?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일은 민주항쟁인가? 학생인권조례는 필요한가? 햇볕정책을 지지하는가? 국정원은 개혁되어야 하는가?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하는가? 보편적 복지가 필요한가? 전교조를 지지하는가? 현 역사교육은 편향되었으므로 새 교과서가 필요한가?

이 진단표는 물론 풍자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이것은 풍자가 아니라 현실이다. 얼마 전 글을 써서 먹고 사는 한 프리랜서 기고가가 이런 말을 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오래 전부터 당비만 내온 민노당 당원인데 그것 때문에 밥줄 끊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준 이도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올리던 정치 관련 트위터 글을 요즘은 거의 올리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대신 트위터에서 이런 글을 만나기 어렵지 않게 됐다. ‘어제 위키에 올라와 있는 지학순 주교님의 내용 중 유신세력의 탄압과 사제단 출범까지의 이야기를 약술한 트윗을 올렸다가, 잠깐 사이에 너무 많은 리트윗이 되는걸 보고 무서워서 그냥 지웠습니다.’ ‘이제 술자리에서 욕하고 뭘 해도 녹취해 날조하고 옆 테이블 사람들이 국정원에 신고하겠구나 간첩이라고!!’ ‘저는 이 시점에서 말 잘못하면 잡혀갈 수도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갖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 새로운 우익을 표방한 뉴라이트 전국연합 창립대회에서 “여러분들의 방향이 시대정신과 국민의 뜻을 반영”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애국세력과 모든 국민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몇 년 뒤 교학사 교과서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출판기념회에서 “우리 청소년들이 왜곡된 역사 평가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왜곡의 사례로 그는 “분단을 남한 책임이라 한다든지 6ㆍ25가 북한의 책임이 아니라 양비론적으로 쓴 책”을 거론했지만, 대안교과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근대화 혁명의 리더로 재평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대목을 지나칠 수 없다.

‘80년대는 다시 돌아다보기도 싫은 소름 끼치는 연대’라고 했던 박 대통령은 박정희 추도식까지 금지한 전두환 정권을 증오했다. 그리고 그 정권이 바뀌자마자 정력적으로 한 일이 박정희ㆍ육영수 기념사업회 발족, 박정희 업적을 기리는 영화 제작ㆍ출판 같은 아버지의 복권이었다. 그는 유신을 죄악시하는 풍토를 ‘그 시절 역사에 대한 왜곡’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국민들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분열을 야기하는 이런 일들은 용납하거나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거나 “자유민주주의를 부인하는 것을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해달라”는 그의 최근 발언들이 어떤 맥락으로 구체화할 것인지 미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당신이 혹시 요즘 들어 정치적인 발언을 할 때 주위를 한 번 더 둘러보게 되었더라도, 박정희 전두환 시절도 아닌데 택시 안에서 기사가 던지는 정치 화제를 애써 피하게 되었더라도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다. 권력의 정점으로 돌아온 노회한 유신의 참모들이 앞장서서 대통령의 뜻으로 받들어, 적어도 ‘시대정신’으로 당당히 부활한 유신을 제대로 알아차린 것일 뿐이다. 자기검열하는 당신은 애국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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