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여러분에게 동기부여를 해야 한다는 착각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지 않으면 가정이 깨지는데, 제가 왜 여러분에게 동기부여를 해야 합니까, 제가 여러분을 낳은 게 아닙니다."
최근 구조조정을 시작한 한 증권사 사장은 14일 지방에서 열린 '직원과의 대화' 자리에서 "최근 인력감축으로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졌다"는 의견이 제기되자 오히려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하며 강하게 다그쳤다. 그는 이어 "내년에 영업 적자가 나면 추가 구조조정을 하겠다"며 "같은 조건의 희망퇴직 대상자라면 미혼자, 부양가족이 없는 직원들부터 대상에 올리겠다"고 밝혔다. 행사에 참석했던 한 직원은 "회사가 어려워진 데 대한 모든 책임을 직원에게 전가하는 모습에 실망했다"며 "빠르게 변하는 증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근본적 대책을 강구해야 할 임원들은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일선 직원들에 실적압박만 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증시 장기침체로 실적이 크게 악화한 증권업계가 연말을 맞아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실적개선 노력을 벌이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부담이 일선 직원들에게만 쏠리고 있다.
올 상반기 증권사의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0%이상 줄었다. 이런 수익성 악화의 여파로 한화투자증권 SK증권 KTB투자증권 등이 하반기들어 인력감축을 진행 중이다.
A증권사에서 10년간 위탁매매 업무를 해온 김모(43)씨는 최근 회사 목표 약정인 25억원을 못 채워 자산관리(WM) 지점으로 쫓겨났다. 그는 "하루 평균 1억 이상 매매해야 회사가 정한 약정을 달성할 수 있는데 반도 못 채웠다"고 말했다.
증권사 관계자는 "본사에서는 약정을 못 채운 직원에게 교육을 여러 차례 받도록 하거나, 지점장에게 경고해서 조치토록 한다거나 혹은 다른 부서에 몰아넣는 방식으로 압박을 가한다"며 "결국 이를 견디지 못한 직원들은 퇴직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최근 증권사들의 감원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위탁매매를 할 수 있으려면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하는데 얼마 전부터 매일 누구를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 까지 일일이 상부에 보고하도록 지침이 내려와 틈을 낼 수 없다"고 했다.
보험과 카드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업계 1위인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최근 전직과 창업지원을 제시하며 인력 줄이기에 나섰다. 하나생명도 전체 임직원의 25%를 퇴직시켰고 한화손해보험도 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외국계 생보사 중에서는 처음으로 알리안츠생명이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카드업계 1위 신한카드도 희망퇴직을 예고했다. 업계 관계자는 "계속되는 불황에 금융회사들이 가장 빠르게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인력감축에 줄줄이 나설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의 김경수 대외협력국장은 "금융사 사장의 임기가 짧다 보니 단기 성과에 급급하는 경우가 많다"며 "장기적인 성장 비전을 가지고 영업환경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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