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의회에 보낸 서신에서 새 국가안보전략을 내년 초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이 동중국해 방위식별구역을 선포한 지 일주일 만에 나온 이 계획은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재균형) 방침을 구체화할 국가전략이 시급해진 상황을 반영한다.
10년 넘게 미국 전략의 중심이던 테러와의 전쟁은 종식 단계에 있고 중동의 시리아 사태와 이란 핵문제도 해결의 가닥이 잡힌 상태다. 따라서 오바마는 중국의 도전이 거세지는 아시아로 외교ㆍ경제의 중심축을 옮기고 그에 필요한 정책 제안과 계획을 새 국가안보전략에 반영할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오바마는 그러나 가장 뜨거운 현안인 중국과 아시아 국가의 영유권 갈등에 어느 선까지 개입할지를 놓고는 아직도 고민 중이다. 29일에는 중국의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설정에 대해 군사적으로는 인정하지 않되 민간 항공사들에게는 비행 계획을 중국에 사전 통보토록 권고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사태 초기 B-52 폭격기를 출격시키고 핵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를 급파했던 강경 조치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이와 관련, 미국의 아메리칸항공과 델타항공은 중국에 비행계획을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딕 체니 전 부통령의 아시아 담당 보좌관을 지낸 스티븐 예이츠는 "미국의 이번 조치는 아시아 동맹 관계를 약화시키는 나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오바마 정부의 고민은 중국을 그냥 두면 남중국해 등에서 유사 상황이 반복되고, 그렇다고 군사적으로 대응하면 우발 충돌이나 사고가 일어나 통제불능 상황에 빠져들 수 있다는 데 있다.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스트로브 탈보트 브루킹스연구소 소장은 "영토 분쟁은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군사 대응에는 한계를 두어야 한다"고 강온 양면 전략을 주문했다.
미국이 강경 조치를 지속하면 먼저 중국과 배타적경제수역 문제로 충돌할 수 있다. 미국은 유엔해양법에 따라 배타적경제수역 내 항행의 자유가 보장돼있다며 하이난섬(海南島) 인근에서 군사 활동을 했지만 중국은 이에 종종 군사적으로 대응했다. 2001년 미 해군의 EP-3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가 충돌하고 2009년 중국 함정 5척이 미 해군 관측선 임페커블호의 항해를 저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미국은 냉전시대의 소련과 달리 영토에 야심을 보이며 해양 질서에 도전하는 중국에 직간접 개입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피터 듀턴 미국 해군전쟁대학 중국해양학연구소 소장은 "중국은 어떤 차원의 지역 안정도 추구하지 않는 게 명백하다"며 "중국은 자신에게 유리한 새 질서를 만들기 위해 (기존 질서를) 붕괴시키려 한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이는 미국이 '영유권 분쟁에서 중립 입장을 취하되 항행의 자유가 침해되면 개입한다'는 원칙 가운데 이제는 중립이 아닌 개입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주문이다.
미국은 당분간 중국과 직접 충돌을 피하면서 군사력 유지와 외교ㆍ경제 관계 강화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 국가들의 중국 경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긴장관계가 완화되는 점에 주목하는 미국은 12개 회원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올해 안에 타결 지으려 하는 한편 중국과 맞서기 위해 미국을 필요로 하는 필리핀 및 베트남과 더욱 밀착하고 있다.
미 의회 주변에서는 10년에 걸친 국방비 삭감 계획을 무효화해 군사력을 강화하려는 협상이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외교협회(CFR)의 국방 전문가 막스 부트는 "중국이 필리핀처럼 약한 국가는 괴롭히면서도 미국에 정면 도전은 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태평양의 미 해ㆍ공군력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군사비가 삭감돼 10년 뒤 미국 군사력이 약해지면 중국은 영유권을 주장하는데 머물지 않고 이를 위한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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