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데이, 고맙데이, 이렇게 와줘서….", "힘내세요 할머니 또 올게요."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밀양 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2,000여명을 태우고달려온 '희망버스'. 1박2일의 활동을 마무리한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1일 오전 경남 밀양시 산외면 보라마을 입구에서 정리집회를 열고 '우리가 밀양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손수건을 주민들의 목에 걸어주자,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이들의 손을 잡아 끌어 안으며 눈물을 훔쳤다. 고령의 주민들은 "힘없는 시골 노인이라고 당하는 게 외로웠고, 힘든 싸움에 지쳤는데 우리에게 희망을 줬다"며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난생 처음 희망버스를 탔다는 직장인 김모(32∙서울)씨는 "밀양 뉴스를 보고 들을 때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 나 꼭 한번 오고 싶었는데, 이별의 순간 도저히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며 "아픔을 나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배운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하루 전인 30일 전국 각지에서 50여대의 버스와 기차, 승용차를 타고 온 2,200여명의 참가자(경찰추산 1,400명)들은 밀양시 단장면 동화전마을 등 송전선로가 지나는 마을에 집결했다. 송전탑 공사 현장 진입로 곳곳을 막아선 경찰과 통행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거나 가벼운 몸싸움도 일어났지만, 큰 물리적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참가자들과 주민들은 오후7시30분쯤 밀양역 광장에 모여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는 제목의 촛불 문화제를 열었다. 강단에 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송전탑 공사 강행은 밀양 주민 뿐 아니라 5,000만 국민 모두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만행"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동균 제주 강정 마을 회장은 "할머니들이 지팡이 하나 짚고 산 위 현장까지 올라가서 싸우는 모습을 보고 울지 않을 수 없었다"며 "강정 마을 역시 매일매일 전쟁을 방불케 하는 싸움을 하고 있어 이제야 오게 돼 죄송한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노래로 희망버스를 환영했다. 무대에 오른 주민 16명은 대중가요를 개사한 노래를 신나게 불러 뜨거운 받수를 받았다.
합창단에 참가했던 상동면 주민 성은희(여∙51)씨는 "희망 버스가 오기 전부터 밀양 주민들은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고 할 정도로 들떠있었다"고 말했다. 이계삼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사무국장도 "주민들이 두 달째 반대 활동을 벌이느라 지쳐 있었는데 희망버스 방문은 큰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밀양주민 이치우(당시 74세)씨가 송전탑 공사 중단을 외치며 분신했던 보라마을에선 설치 미술가들이 '송전탑 건설 반대 상징탑'을 만들었다. 비닐을 둘러 압축한 짚단더미 45개를 원뿔 형태로 쌓아 조형물을 세워, 겉면에는 밀양 주민의 얼굴을 그린 뒤 '밀양의 얼굴들'이라고 이름 붙였다.
보라마을 이종숙 이장은 "많은 분들이 도움을 줘 너무나 감사하다. 앞으로도 관심을 가져달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문규현 신부는 "끝까지 연대한다면 희망이 지지 않는 밀양으로 지켜낼 수 있다"며 "우리가 곧 밀양이다"고 강조했다.
밀양=강성명기자 sm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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