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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엌 그녀의 식탁] <2> 영화 '결혼전야'의 홍지영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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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엌 그녀의 식탁] <2> 영화 '결혼전야'의 홍지영 감독

입력
2013.12.01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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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여자는 예비신랑 몰래 한국요리를 배우러 다닌다. 여자를 바라보는 뭇 사내들의 뜨거운 시선이 못내 거슬렸던 남자는 까닭 없이 모습을 종종 감추는 여자의 뒤를 쫓다 의구심을 폭발시킨다. 남자의 불신에 실망한 여자는 남자를 떠나려 한다. 여자가 이별을 위해 준비한 음식은 된장찌개. 뒤늦게 여자의 진심을 깨달은 남자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뚝배기를 비운다.

상영 중인 영화 '결혼전야'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다. 이 영화에서 된장찌개는 퇴색한 사랑의 감정을 전하기도 한다. 요리사 약혼자가 오래된 연인에게 된장찌개를 데워주겠다고 말하자 다른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온 여자는 작별을 암시하는 말 한 마디를 던진다. "(그렇게 나한테 다시 잘하려 한다고) 처음처럼 (사랑이) 똑같아질까." 특별하다 할 수 없는 된장찌개가 인물들의 농밀한 감정을 직설적 표현 없이도 스크린에 돋아나게 하는 특별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결혼전야'는 홍지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홍 감독의 장편 데뷔작 '키친'(2009)은 '결혼전야'보다 요리가 더 두드러지게 양각된 영화다. 펀드매니저 출신의 요리사와 그의 후배 요리사, 그리고 한 여인이 이루는 남다른 삼각관계는 요리를 통해 맺어진다. 세 남녀가 화사한 햇살이 드는 식탁에 앉아 커다란 보울에 샐러드를 나눠 먹는 장면 등이 미각을 자극한다. '키친'과 '결혼전야'는 요리에 대한 감독의 애정과 미감을 스크린에 투영한다.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요리를 작품의 주요 모티프로 삼는 홍 감독은 어떤 음식으로 손님들을 맞고 음식과는 또 어떤 사연을 맺고 있을까. 29일 오전 서울 신당3동 그의 집을 찾았다. 12층 창가 너머 둔덕에 정착한 마른 겨울 나무들이 서정을 자극했다. 그는 취재를 빙자해 맛 탐방을 온 낯선 손님에게 '치즈 닭가슴살 튀김'을 내놓았다. 닭가슴살 사이 치즈를 넣고 밀가루와 계란, 콘프레이크를 버무린 뒤 기름에 튀긴 요리다. 피자치즈가 닭가슴살 안에 감춰지고 빵가루 대신 콘프레이크를 활용해 여느 닭가슴살 튀김과 다른 맛을 빚어냈다. 감자와 샐러드까지 곁들여져 따스한 포만감을 품은 요리였다.

홍 감독은 "큰 품 들이지 않고 만들 수 있으면서 보잘것없는 요리 솜씨도 감출 수 있는 음식"이라고 했다. "영화 작업 때문에 오랫동안 요리를 하지 못해 손놀림이 둔하기에 좀 쉽게 할 수 있는 음식을 택했다"고도 말했다. 자신의 요리 실력을 애써 낮추는 말들이었다. 그는 "두 살 터울 언니와 곧잘 맛 집을 찾아 다닌다"며 "가격에 맞게 맛있는 음식을 내놓는 음식점이 드물다"고 했다. 그런 아쉬움 때문에 그는 "나만의 레시피를 하나하나 만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나이 50이 되기 전에 작은 공간을 마련해 그 레시피들로 사람들에게 적당한 가격에 포만감을 안겨주고 싶다"는 희망도 밝혔다. 치즈 닭가슴살 튀김은 간편 요리라는 식의 말은 요리사를 꿈꾸는 홍 감독의 엄살이었던 셈이다.

홍 감독은 미식가 아버지를 둔 덕분에 일찌감치 맛을 깨달았다. 결혼 한 달 만에 영화 유학 길에 오른 남편('여고괴담 2'와 '내 아내의 모든 것' 등의 민규동 감독)을 따라 프랑스 파리를 찾으면서 홍 감독의 '맛 인생'은 더욱 풍요로워졌다. 세계적 요리학교 르 꼬르동 블루에 다니는 한국 유학생이 같은 건물에 생활하며 맛깔진 요리들을 더 맛볼 수 있었다. "그 때부터 남자의 투박한 손이 섬세한 요리를 해내는 모습에 반했다"고 했다. 그의 영화에 요리하는 남자가 등장하는 이유다.

홍 감독은 "홀로 해외여행을 가면 여행지의 맛 집 하나를 꼭 가려 한다. 그곳의 사람들, 음식, 그릇 등을 살피며 영화의 아이디어를 얻고는 한다"고 말했다. 산해진미를 탐해온 홍 감독이 평생 잊을 수 없는 음식 맛은 무엇일까. 그는 "강릉이 고향인데 어릴 적 어머니가 찬 바람 맞으며 김장독에서 꺼내온 파김치 맛은 겨울만 되면 떠오른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영화도, 결혼도 요리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셋 다) 재료를 선별하고 완성하기까지 정성과 노력이 빠지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요리와 영화, 결혼은 자기 의지대로 되지 않는 여러 변수가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이라고도 했다. "나는 별로라고 생각하는데 (영화를 보거나 요리를 먹는) 사람이 더 좋게 반응할 수 있다"고 또 다른 공통점을 꼽기도 했다. 좌충우돌하며 힘겹게 완성된 영화들이 걸물이 되는 것처럼 별스럽지 않은 재료들로 급하게 만들어낸 요리가 혀를 매혹시키는 경우는 종종 있다. 치즈 닭가슴살 튀김도 이에 해당될 듯하다.

"미국 유학생이던 친구가 알려준 요리법이에요. 너무 배고프다는 남자친구를 위해 냉장고를 열었더니 유통 기한이 다 된 피자 치즈와 꽁꽁 언 닭가슴살이 있었대요. 처치 곤란이었던 재료로 궁리 끝에 만들어낸 게 치즈 닭가슴살 튀김이에요. 저는 여기에 콘프레이크를 바르고 샐러드를 함께 내놓으면 그럴싸한 한 끼 식사가 되겠다 생각한 것이지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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