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분의 정규 시간이 모두 끝나고 후반 추가 시간은 4분. 이마저도 1분 지난 후반 50분, 울산 현대가 안방에서 우승 축배를 들어 올리려는 찰나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90분 내내 상대 골문을 두들기던 포항 스틸러스의 김원일(27)이 문전 앞 혼전 중에 극적인 오른발 슈팅을 성공시켰다. 황선홍(45) 포항 감독을 비롯한 모든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얼싸 안고 환호했고 울산 선수들은 망연자실한 듯 그대로 주저 앉았다.
포항이 6년 만에 2013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챔피언에 등극했다.
포항은 1일 울산문수구장에서 열린 울산과의 40라운드 최종전에서 1-0의 승리를 거뒀다. 경기 전까지 승점 71로 울산에 2점 뒤져 있던 포항은 승점 74(21승11무6패)를 기록, 울산(승점 73)을 따돌렸다.
시즌 막판 울산에 승점 5까지 뒤지며 정상 등극이 힘들어 보였던 포항은 6연승의 가파른 상승세로 지난 10월 FA컵에 이어 2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와 함께 K리그 팀 최초로 리그와 FA컵을 한 시즌에 모두 차지한 최초의 팀으로 기록됐다. 과거 부산 대우, 수원 삼성이 K리그와 리그컵을 모두 차지했으나 FA컵까지 거머쥐진 못했다. 포항은 이번 우승으로 통산 5번째(1986, 1988, 1992, 2007, 2013) 정상에 올랐다.
용병 없이 토종 선수만으로 구성된 포항은'스틸타카(스틸야드+티키타카)'라는 공격적인 플레이로 시즌 막판 6연승의 신바람을 내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한편 FC 서울의 데얀은 전북 원정에서 1골을 터트려 19골로 김신욱(울산ㆍ36경기 19골)을 제치고 사상 첫 3년 연속 득점왕에 올랐다. 29경기에서 19골을 넣은 데얀은 경기 출전 수가 적어 득점왕의 영예를 차지했다.
황선홍(45) 포항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굳은 결심을 했다. 구단 지원이 줄자 외국인 선수 없이 포항 유스 출신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 토종 선수들로만 한 시즌을 치르겠다고 선언했다. 포항은 겨우내 만들어 온 정교한 패스를 앞세워 지난 5월18일 울산과의 경기 전까지 6승5무를 기록, 지난 시즌을 포함해 19경기 무패(11승8무)행진을 이어갔다.
FC바르셀로나를 연상시키는 짧은 패스 위주의 축구로 '스틸타카'라는 칭호를 얻은 포항은 경기를 치를수록 조직력이 탄탄해졌고 10월 전북을 꺾고 FA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마침내 결실을 봤다.
황 감독은 쇄국 정책을 펼쳤던 흥선대원군에 빗대 '황선대원군'이란 애칭을 얻었다. 포항은 9골을 넣은 조찬호(27)가 팀 내 최다 득점자일 정도로 두 자릿수 골을 터트린 공격수는 없었지만 고무열, 박성호(이상 8골) 등 선수들 전원이 고른 활약을 펼치며 막판 역전 우승을 완성했다.
포항의 우승 뒤에는 베테랑들의 뒷받침이 있었다. 공격수 노병준(34)은 7월 성남과의 FA컵 득점을 시작으로 39라운드까지 9골을 기록했다. 많은 골을 넣진 못했지만 위기의 순간마다 선발 또는 후반 막판 조커로 나서 승리에 힘을 보탰다. 특히 지난달 27일 서울과의 경기에서 2골을 넣으며 시즌 우승 드라마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골키퍼 신화용(30)도 포항의 뒷문을 책임졌다. 김승규(울산)에 비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진 못했지만 33경기에 나가 31골(경기당 0.94골)만 내주는 집중력을 발휘했다. 여기에 '가을 사나이' 박성호(31)도 팀이 주춤거리던 9월 4경기에서 4골을 넣어 활력을 불어넣었다.
주장 황지수(32) 등 포항의 고참들은 지난해 신인왕 이명주(23)와 유소년 팀을 거친 고무열(23), 김승대(22) 등 패기 넘치는 젊은 피와 하모니를 이뤄, 결국 챔피언 화룡점정을 찍었다.
이재상기자 alexe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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