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도 간단하고 경기 내용도 단순해 보이는 축구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아마도 경기 결과의 예측이 어려운 것도 한 몫을 하리라. 아무리 실력 차가 많이 나는 국가 간 경기라도 골 차가 그리 많이 나지 않고, 예상 밖으로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현상은 오래된 신화에서부터 시작해서 현대의 기업에 이르기까지 널리 발견된다. 예를 들어 구약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시작해서,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의 선전도 이에 해당한다. 또 월등한 군사력을 가진 미국이 베트남에서 패퇴한 것도 좋은 예이다. 이러한 예들은 예외적인 일일까 아니면 흔히 있는 일일까? 만일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데 비책이 있다면 이는 과연 무엇일까?
나 같은 책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 말콤 글래드웰은 최근 신간 이라는 책에서 이 문제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는 강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조직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고, 약자에게도 그만의 강점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거인 골리앗은 사실 뇌의 종양으로 성장이 멈추지 않는 거인증이 있었던 것일 뿐 실제로는 시력이나 이동능력이 매우 떨어졌고, 이와 반대로 양치기 목동 다윗이 사용한 돌팔매는 사실 고대 전투에서 기병만큼이나 중요한 무기 체계였다는 것이다. 전술도 중요하다. 인류 전쟁 역사를 자세히 분석한 아레귄-토프트라는 학자의 연구 결과를 보면, 인구나 병력의 수가 5배 이상 차이 나는 즉 확연히 강자와 약자가 구분되는 전쟁에서도 강자가 승리한 비율은 70%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1950년 이후의 전쟁에서는 약자로 분류되는 국가나 지역이 승리한 비율이 오히려 높다. 강자가 선택하는 전술과 같은 작전을 쓰면 약자가 질 확률이 높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약자가 승리할 확률도 상당히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20여 년 간 비약적인 발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과학계는 전세계에서 보면 아직도 약자에 속한다. 특히 이공계 고급 연구 인력의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고, 논문의 주요 생산처인 대학의 경우 이 차이가 더욱 크다. 국내 대학간 격차도 매우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약자에 속한 대학들은 어떤 전략을 구사해야 할까? 큰 건물을 짓고, 학생 수를 늘리고, 서로 비슷한 전공 분야를 특성화 주제로 선택하는 것. 과연 이러한 방법으로 강자를 이길 수 있을까?
대학마다 각자 처한 상황과 역량이 다르기 때문에 한마디로 답할 순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강자와 동일한 전략을 사용하다가는 패할 확률이 더욱 커진다는 점이다. 자신의 연구 기반이나 학생들의 수준은 생각지 않고 거의 모든 대학들이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고 있으며, 전략분야도 'IT-BT-NT'융합 기술이라는 단어 외에는 별로 살펴볼 수 없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이다. 연구 인프라가 없는 대학은 '학부교육 중심'을 핵심 전략으로 삼는 것이 더 현명하며, 연구 분야도 농학 의학 환경학 해양학 의공학 산림학 등 모두가 뛰어들지 않지만 나에게는 강점이 있는 분야를 살펴야만 한다. 또 해외의 유수대학과 경쟁하려면 외국에서는 볼 수 없는 연구 역량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연구 중심 대학간 공동 연구와 강의 공유, 그리고 대학과 정부 출연 연구기관과의 밀접한 공동 연구를 통해서 상승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국내 연구 기관이나 다른 대학과의 공동연구가 해외 기관과의 협력보다 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골리앗과의 싸움에 앞서 사울 왕이 갑옷을 입혀줬을 때 다윗은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다며 벗어 던지고, 자신의 주특기인 돌팔매에 쓸 강가의 돌을 골라 들었던 사실을 기억하자. 멋진 건물을 짓고, 네이처나 사이언스지에 논문을 실었던 젊은 교수 몇 명 뽑으면 연구 중심 대학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무거운 갑옷을 들쳐 입고 골리앗의 바로 앞에 서서 칼을 휘두르는 다윗의 꼴이리라.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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