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사 교과서의 친일ㆍ독재 미화와 사실 오류로 시작된 한국사 교과서 논란이 결국 법정으로 가게 됐다. 교육부의 수정명령을 받은 교과서 중 교학사를 제외한 6종 교과서 집필진이 수정명령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로 29일 결정했기 때문이다.
미래엔 교과서의 대표집필자인 한철호 동국대 교수는 "앞서 교육부가 수정 권고한 것보다 더 많은 내용을 자체 수정했는데도 비중립적이고 편향된 잣대로 강제 명령을 했다"며 "법적 대응으로 교육부의 비합법적인 행위를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와 판박이인 5년 전 금성출판사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사태와 비교해 보면, 법원이 집필진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금성출판사 교과서 논란은 2004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좌편향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정치권의 비판이 계속되자 교육부는 2008년 11월 이 교과서 내용 33곳에 대해 수정명령을 내렸고, 3명의 집필진은 교육부를 상대로 부당한 수정명령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7일 서울고법 행정3부는 수정명령 취소소송 파기환송심에서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에 따라 수정명령을 취소하라는 1심 판결은 정당하다"고 최종적으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앞서 2월 대법원은 "교육부의 수정명령이 표현상 잘못이나 기술적 사항 또는 객관적 오류를 잡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 검정을 거친 교과서를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경우에는 새로운 검정 절차를 취하는 것과 동일하다"면서 "검정 절차상 교과용 도서심의회의 심의에 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파기환송 사유를 밝혔다.
이번에 교육부가 수정명령한 내용은 표현상의 잘못이나 기술상의 오류를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수정명령 절차가 적절한지 논란이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회 입법조사처 역시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고려할 때 수정명령을 하기 위해서는 8개월에 달하는 교과용도서심의회의 심의 또는 그에 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냈다.
그러나 교육부는 수정명령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나승일 교육부 차관은 "413개 기관과 단체의 추천으로 연구위원과 심의위원 15명으로 수정심의회를 구성해 교과서 집필기준, 편수용어 등에 근거해 논의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만약 법원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교육부의 수정명령이 반영되지 않은 교과서가 학교에 배포된다. 행정법원 관계자는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진다면 법률적 효력은 수정명령 이전의 교과서에 한해 발생하게 되므로 수정명령 이전의 내용으로 교과서가 일선 학교에 배포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처분 신청이 각하되면 수정명령을 받아들인 교과서만 배포되고 수정명령을 거부한 교과서에 대해선 교육부의 발행정지ㆍ검정취소 등 행정조치가 내려지게 된다.
가처분 신청으로 끝나지 않고 본안 소송으로 간다면 일대 혼란이 예상된다. 본안 소송의 결과에 따라 교육부의 수정명령에 따른 교과서의 수정, 행정조치를 모두 되돌려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혼란을 앞두고 일선 고교들이 교과서를 채택할 수 있을지도 우려되고 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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