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선포가 아시아를 미국과 중국의 치열한 군사ㆍ외교 경쟁의 각축장으로 돌변시키고 있다. 중국이 해양 패권에 본격 도전하자 미국은 지금을 적극적인 아시아 개입이 필요한 시점으로 판단하고 있다.
동중국해에서 B-52 전략 폭격기와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로 중국에 무력시위를 한 미국은 특히 군사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신형 대잠 초계기 P8 6대를 내달 오키나와에 배치하고 괌 미군기지에 배치된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 3대의 활동도 확대하기로 했다.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하기 3일 전만해도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중국을 상대로 경쟁과 협력이라는 '투 트랙 전략'을 제시했다. '주요 파워 국가의 새 관계 모델'로 지칭된 이 전략은 중국과의 피할 수 없는 경쟁을 관리하고 국가이익이 걸린 사안은 긴밀히 협력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라이스는 중국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대일본 방위공약은 언급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3일이 지난 뒤 미국의 생각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대양으로 가는 관문인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를 뚫어야 하는 중국의 도전을 '관리' 하기가 어려워진 탓이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23일 성명에서 중국의 조치를 '역내 정세 변화를 위한 규모 확대와 연계된 행동'으로 규정했다.
뉴욕타임스는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이 버락 오바마 정부에게 아시아 정책이란 '뼈'에 '살'을 붙여나가도록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대응도 외교와 경제를 앞세운 소프트파워보다 군사력인 하드파워를 새롭게 구축하는 것에 방향이 모아지고 있다.
중국의 도전이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들과 분쟁 중인 남중국해로 확산될 수밖에 없는 측면도 영향을 주고 있다.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은 27일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장관과의 전화통화에서 이 같은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미일 공동대응을 강조하면서 아시아 중심 정책의 가장 우선 사안이 아시아 주둔 미군의 재배치라고 강조한 뒤 ▲지리적 분산 ▲작전상 기동성의 확보 ▲정치적으로 지속 가능한 군사적 배치를 그 방향으로 제시했다. 조지 W 부시 정부에서 아시아 담당 보좌관을 지낸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중국의 도전에 맞서려면 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력을 확인시키면서 주변 동맹국의 방어능력을 증강시키고 반중국 정서를 갖고 있는 아시아 국가를 규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6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동아시아 해역에서 항행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는 한 중국의 뒷마당인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의 영유권 문제에 개입할 의사가 없음을 간접 피력했다. 그러나 5개월 만에 두 세력의 신해양패권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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