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알람이 울린다. 부시시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8시에 집을 나서려면 씻고 옷 챙겨 입기에도 바쁘다. 물 한 잔 못 마시고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아침을 거르는 하루는 이미 일상. 밥 챙겨 먹겠다고 부산 떠는 것보단 잠이 더 아쉽다. 만원 지하철 옆에 선 남자는 스마트폰으로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를 보는 중이다. 마침 호주 출신의 샘 해밍턴이 군대에서 먹는 햄버거, 일명 '군대리아'를 맛있게 먹고 있다. 빵에 잼을 바르고 패티를 끼워 먹고, 남은 빵까지 우유에 적셔먹는데 그 '먹방(먹는 방송)'만으로 몇 분이 훌쩍 간다.
확실히, 지금 TV는 '먹방'이 대세다. 어느 예능 채널을 켜든 먹는 장면이다. 심지어 시사 교양 프로그램까지 '먹방화'하는 듯해서, 잘못된 식습관을 지적하는 MC가 스튜디오에 차려진 요리를 먹고, 미심쩍은 식당을 고발하면서도 "제가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먹방은 소비의 견인차다. MBC의 예능 프로그램'아빠 어디가'에서 8살짜리 윤후가 너구리와 짜파게티를 섞은 '짜파구리'를 소개한 뒤 해당 제품 매출은 전년대비 22%나 증가했다.
자취 3년차 친구 J는 종종 온라인 방송인 아프리카 TV 먹방을 보며 밥을 먹는다. 연예인도 아닌 일반인 DJ가 컴퓨터 앞에 피자 족발 보쌈 중국음식 등 혼자서는 도저히 다 먹을 수 없는 양의 배달음식을 펼쳐놓고 맛있게 먹기만 하는데, 이런 먹방을 시청하는 사람이 하루에만 15만명이란다. 이들이 먹방에 열광하는 이유는 '대리만족' '식욕억제 사회에 대한 전복의 쾌감' 'DJ와 시청자의 대화에서 느낄 수 있는 유사 집밥 문화'등 다양하다. 이유가 뭐든 거기에는 '1인 밥상= 외로운 밥상'이라는 보편정서가 배경처럼 깔려 있다. 아예 '식샤를 합시다'라는 제목의 먹방과 1인 가구를 주제로 한 드라마도 등장했다.
저녁 8시. 간만에 회식도 약속도 없이 혼자가 된 퇴근길, 단골 김밥천국에 들러 '밥'을 산다. 컴퓨터 모니터를 마주하고 즐기는 나홀로 만찬 메뉴은 라볶이. 매운 떡을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방송에 나온 철학자 강신주씨가, 비수처럼, 한 마디를 던진다. "한 끼를 해치워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정성스럽게 차리는 불편함을 감내하기 싫어서 먹는 음식은 사료다." 내가 먹는 것은 사료일까?
통계청 추정으로 한국에는 454만 1인 가구가 산다. 전체 가구 대비 25.3%. 2035년이면 42.3%까지 가파르게 늘어날 전망이라고 한다. 문득 나와 같은 2030세대 1인 가구의 식탁 안부가 궁금해졌다. 다들, 밥, 잘 챙겨먹고 사나요?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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