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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가는 교과서 논쟁] 팩트까지 '고쳐라' 지시… 수정명령 주요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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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가는 교과서 논쟁] 팩트까지 '고쳐라' 지시… 수정명령 주요내용

입력
2013.11.29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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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교육부가 고교 한국사 교과서 7종에 대해 내린 수정명령에는 널리 알려진 사실마저 수정하라는 내용이 포함돼 '국가의 과도한 개입'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가장 논란이 예상되는 대목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5ㆍ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기술이다. 미래엔 교과서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다니!'라고 붙인 소단원 제목은 당시 수사기관의 거짓 발표를 인용해 신문 1면 제목으로도 달렸던 사실이지만, 교육부는 "교과서에 사용되는 용어로 부적절하다"며 수정을 요구했다. '피로 얼룩진 5ㆍ18 민주화 운동', '궁지에 몰린 전두환 정부'라고 표기한 제목도 고치도록 했다.

심은석 교육부 교육정책실장은 "제목이 부정적인 뜻으로 일관하고 있어 학생들이 우리 역사에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해 달라는 뜻으로 수정명령을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제 침략 등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 패배적이고 부정적인 사관을 극복해야 한다'는 뉴라이트 진영의 자학사관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두산동아와 지학사 교과서가 "금강산 사업 중단,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등이 일어나 남북 관계는 경색되었다", "천안함 침몰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남북관계는 경색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적은 부분에 대해서도 교육부는 "행위의 주체가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는 "이런 표현까지 일일이 써라 마라 하는 건 검정의 취지를 벗어난 명령"이라며 "모든 교과서를 사실상 같은 교과서로 만들겠다는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북한 관련 서술도 수정명령 대상이었다. 금성출판사가 참고자료로 북한 학계의 주체사상 관련 주장을 실은 것을 두고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소개하고 있어 학생들이 잘못 이해할 소지가 있다"며 수정을 명령했다. 북한 인권과 관련해 "북한 사회에 경제적 곤란이 심화되어 탈북자들이 늘어 가고 있으며, 심각한 인권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고 서술한 천재교육 교과서에 대해서도 "구체적 사례가 제시되어 있지 않아 수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준식 연세대 연구교수는 "사료는 원문을 출처로 인용하는 게 맞고, 북한 인권문제가 언급돼 있는데 고치라는 건 문제"라며 "수정심의회가 자의적인 기준으로 '반공반북교과서'를 쓰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금성출판사 교과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책을 서술하면서 "외자 도입을 통한 경제 개발과 수출 주도형 성장 정책 역시 성과가 컸던 만큼 부작용도 많았다"며 "1997년 말에 외환 위기가 일어나는 한 원인이 되었다"고 적은 것도 삭제 명령을 받았다.

수정심의의 정당성을 두고 논란이 예상되지만 교육부는 심의위원 명단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심 실장은 "심의위원 중에 비공개를 요청한 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준식 교수는 "교육부가 이번 수정명령이 정당하다고 자신한다면 익명성 뒤에 숨을 게 아니라 어떤 전문가가 심의에 참여했는지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도 "교과서 집필자들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훼손하는 나쁜 전례를 만들었다"며 "교사가 충분히 수업을 준비할 권리, 학생들이 제대로 교육받을 권리까지 교육부가 침해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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