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임재천이 2000년부터 꼬박 10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사각의 프레임을 통해 바라본 한국의 모습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디지털 사진기술이 보편화하면서, 도치와 상징화로 대별할 수 있는 작가주의가 사진계의 주류로 자리잡으면서, 뒤편으로 밀려나버린 핍진한 삶의 기록, 곧 다큐멘터리가 이 책에 담겼다. 36.5도의 온도가 책장을 넘길 때 손끝에 닿는다. 필경 그것은, 피사체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렌즈의 광학적 중심에서 1인치 뒤에 있는, 작가의 촉촉한 눈망울의 온도일 것이다.
4X5 사이즈와 채도 높은 포지티브 필름, 인간의 시각보다 화각이 넓은 렌즈. 사진에 대해 좀 안다면 이 조건이 사진작가에게 얼마나 진지한 자세를 요구하는 것도 이해할 것이다. 그건 상품성 있는 사진의 조건과 한참 먼 것이기도 해서, 이 작가는 분명 스스로 치열했던 만큼 외로웠을 것이다. 단박에 시선을 잡아 당기는 이미지는 없다. 우리가 무심히 흘려 보내고 있는 시간의 절편들, 슴슴한 듯하나 긴 여운을 주는 삶의 풍경들이 책장을 채우고 있다. 그 덤덤한 기록이 찬연히 느껴지는 것은, 바로 우리가 벅차게 살아낸 날들의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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