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에게 소중한 단어를 뽑았다는 이 책의 선전은 2,820명을 대상으로 한, 통계적으로 그다지 엄밀하지도 않은 조사로는 과장임에 분명하지만 어쨌든 결과는 그럼직한 것이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단어가 무엇입니까'라고 묻고 3개를 적어 달라는 응답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답은 '가족'이었다. 이어 '사랑' '나' '엄마' '꿈'. '엄마'가 상위권에 올랐으니 '아빠'도 궁금할 것이다. 다행히 이 책에서 묶은 50개 단어 안에는 들어있다. 다만 순위가 저 아래 23위이고 호칭도 '아빠'가 아닌 '아버지'다.
물론 이 책을 읽을만하게 하는 것은 이 랭킹이 아니다. 카피라이터 정철이 자신의 체험을 듬뿍 넣어 단어마다 써내려 간 이야기들이 어떤 대목에서는 가슴에 사무치고, 어떤 페이지에서는 힘을 돋게 만든다. 대체로 에세이 형식이지만, 때때로 훨씬 간결한 카피 같은 글로 강한 호소력을 전한다.
'엄마'라는 글의 서두에 저자가 뽑은 카피는 이렇다. '엄마를 네 글자로 표현하면, 미안해요, 열두 글자로 표현하면,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했어요.' 딸이 처음 아르바이트 하는 메밀국수집에 손님으로 찾아간 자신과 아내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동물은 나이를 먹으면 몰래 엄마를 떠나는 연습을 한다. 엄마를 떠나면 친구라는 또 다른 재미있는 동물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것은 자신이 수백 번도 더 속삭였던, '엄마 사랑해'에 붙은 그 사랑보다 수백 배 더 짜릿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결국 자식은 독립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앞세우며 엄마를 떠난다. 하지만 그것은 자식에게나 독립이지 엄마에게는 분리다.…팔 하나, 다리 하나가 뚝 잘려 나가는 것 같은."
순위에 들지 않았지만 저자가 고른 단어 중 하나가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한 '그냥'이다. '사람이 좋아지는 백만 가지 이유 중에서 가장 멋진 이유'이자 '논리와 과학이 개입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멋진' 이 단어야말로 '헐렁해집시다. 넉넉해집시다. 가벼워집시다'는 저자가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