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판사가 격분한 군중과 마주했다. 군중은 자기네 공동체의 일원을 잔인하게 살해한 자를 찾아내달라고 판사에게 요구한다. 그러지 않으면 살인자를 숨겨주고 있다고 의심되는 다른 공동체를 공격해 복수하겠다는 것이다. 판사는 살인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판사는 해당 공동체가 파괴되고 주민들이 학살당하는 일을 막기 위해 무고한 사람 한 명을 골라내 처형하기로 결심한다. 판사의 결정은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일까?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인간에게는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으며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도덕적 의무론자이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한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훨씬 더 많은 사람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내린 결정이므로 정당화된다'고 생각하는 도덕적 결과론자이다. 전자를 대표하는 철학자는 칸트이고, 후자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자들이다.
프랑스 철학자 뤼방 오지앙의 는 위독한 환자를 싣고 가는 구급차, 무모한 장기이식, 사람 잡는 전차 등 19가지 도덕적 딜레마를 제시하면서 그 상황을 어떻게 풀어가는 것이 현명한지 생각해 보게 하는 이를 테면 도덕철학 연습장 같은 책이다.
인간의 도덕적 판단은 옳고 그름, 선과 악에 대한 도덕적 직관과 이런 직관들을 어떻게 적용할까에 관한 사고인 도덕적 추론의 원칙으로 정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추론에서 중요한 원칙으로는 자신에게 불가능한 일을 할 의무가 없다는 '의무는 능력을 내포한다', 사실 판단과 가치 판단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현재 있는 것에서 있어야만 하는 것을 끌어올 수 없다', 사물이나 사건의 무게를 다른 척도로 재는 것은 부당하다는 '유사한 사례들은 유사한 방식으로 다뤄야 한다'를 꼽았다.
다른 도덕철학 개론서들과 달리 눈 여겨 볼 것은 저자가 딜레마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서 기존의 도덕이론을 비판적으로 보도록 하기 위해 '실험 도덕철학'이라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험 도덕철학은 인간 행동에 대한 실험과 심리연구를 철학에 도입한 것이다. 이런 실험을 통해 갈등 상황에서 판단을 내리게 만드는 이른바 도덕적 직관이라는 것이 어떤 상황에서도 일관성이나 타당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실험한다. 1달러를 동전으로 바꿔달라는 길거리 실험이 달콤하고 구수한 빵 냄새가 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확연히 달라지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자명할 것 같은 도덕적 직관 역시 실은 심리적인 요인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더 많은 희생을 막기 위해 무고한 한 사람을 희생시키기로 한 위의 판사의 결정이 부도덕한가를 미국과 중국 대학생들에게 각각 물었다. 전혀 부도덕하지 않다(1)에서 매우 부도덕하다(7) 사이에 점수를 매기게 했더니 미국 대학생들은 평균 5.5점, 중국 대학생들은 4.9점을 주었다. 이 책은 도덕적 원칙이라는 것이 얼마나 자명하지 않고 또 허점투성이인지에 더불어 이처럼 사회와 문화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것까지 알게 해준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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