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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11월 30일] 방공구역 파문, 우리의 국익

입력
2013.11.2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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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관계가 참 많이 변했다. 방공식별구역 논란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2006년 미국을 방문한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백악관에서 온갖 수모를 당했다. 환영식장에서 진행자가 중국을 대만으로 잘못 소개하는가 하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연설을 마치고 내려오는 후 주석의 소매를 잡아당기는 결례를 했다. 중국 반체제 파룬궁(法輪功) 인사들은 "살인을 중단하시오"라고 고함치며 후 주석의 연설을 방해했다. 의전 실수가 한꺼번에 일어나자 미국 언론들은 "의전에 집착하는 중국 지도자에 대한 의도적인 냉대"라고 꼬집었다. 이 때문인지 정상회담에서 북한 이란 핵문제, 무역불균형 등 현안에 대한 가시적인 합의는 나오지 않았다. 리자오싱(李肇星) 외교부장이 귀국 후 파룬궁 문제로 질책을 받은 뒤 다음해 결국 경질되는 등 후유증도 컸다. 이 날의 소동은 '도광양회(韜光養晦ㆍ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조용히 힘을 키운다)'라는 후 주석의 대미외교에 맞물려 묘한 여운을 남겼다.

지난 6월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5세대 지도자로서 취임 후 처음 미국을 방문해 '신형대국관계'를 주장했다.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의 핵심이익을 존중하면서 새로운 대국 모델을 만들자는 뜻이다. 지금 생각하면 미국은 이런 중국의 속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듯싶다. 중국의 위상에 대한 진일보한 내용이었지만 기본적으로 도광양회의 프레임에 갇혀 있던 미국으로서는 불과 5개월 뒤 중국이 미국의 핵심이익을 침해하는 방공식별구역 일방 확장 카드를 들고 나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형 대국관계가 덜컹거리며 경착륙하게 된 것은 크게 보면 미국의 아시아 중시 외교가 배경이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목적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미국을 대리해 일본을 아시아에서의 중국 대항마로 키우려는 전략이 분란을 초래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분석일 것이다. 미국과 신뢰를 유지하면서 동북아에서 패권적 지위를 노리던 중국이 일본의 확장까지 용인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더욱이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과 과거사 문제를 안고 있는 일본을 아시아 경략의 수하(手下)로 내세운 판단이 현명한 것이었는지 의문이 남는다.

중국이 임의로 확장한 방공식별구역에 곧바로 B-52 전략폭격기를 발진시키고, 인근 해역에 항공모함까지 동원하는 것을 보면 미국은 이번 사태를 미중관계의 중대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는 듯 하다. 처리 결과에 따라 향후 수십년 간 미중 양자관계는 물론 국제사회의 힘의 질서가 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느껴진다. 미국 언론에서는 중국의 도발이 미국의 아시아 외교를 강화하는 명분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중국이 실수했다'는 취지의 평가를 내리고 있다. 척 헤이글 국방장관은 미국이 명시적으로 입에 담기를 꺼렸던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해 "센카쿠는 미일안보조약 적용 대상"이라는 성명을 처음 발표하는가 하면 국무부는 "중국의 일방적인 행동은 동중국해의 현상유지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라고 비난하는 등 일제히 '중국 때리기'에 나섰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의 일본 방위를 재확인하고, 한국의 친중국 행보에도 제동이 걸렸다"고 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다음달 초 한국 중국 일본 등 3국을 순방한다. 중국에는 방공식별구역에 대한 미국의 불용의지를 분명히 하고, 한국과 일본에는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의 해법을 제시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위기이자 기회이다. 중국의 도발을 목격한 미국이 일본과의 안보유착을 강화하리라는 것이 부담이라면 그럴수록 한국의 지정학적 몸값이 커진다는 것은 자산이다. 그렇잖아도 미국에서는 동북아 핵심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과거사 문제로 악화일로를 걷는 것에 대해 초조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방공식별구역 파문은 우리보다는 미국과 일본에 더 큰 도전이다. 한미일 3각 안보체제를 빨리 가동시키려는 미국의 의도를 잘 이용해 우리의 안보이익은 물론 일본에 대한 우리의 요구를 최대한 관철시키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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