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5000만년 전으로 타임머신 타고 시간여행무엇을 먹고 사냥은 어떻게… 공룡잔해로 만들 수 있는 도구는어떤 놈을 만나면 도망쳐야 할까… 의문의 생존법 과학적으로 풀어
경남 고성군 바닷가에는 공룡 발자국 화석이 남아 있다. 거대한 공룡 발자국을 따라 꼬마가 아빠 손을 잡고 도란도란 속삭이며 걷는다. 1억 년의 시차를 둔 산책. 아름답다. 그들과 몇 발자국 떨어져 걷는데 부자의 대화 소리가 들린다. "아빠, 공룡이 왜 이곳을 걸었을까요?" "물 마시러 왔겠지." "그렇구나. 그런데 아빠, 공룡은 바닷물 먹었나요?" 이렇게 부자의 대화는 중단됐고 공룡 발자국이 다 끝날 때까지 결국 아빠의 대답은 엿듣지 못했다.
분명히 공룡 발자국 앞에는 남해 바다가 펼쳐져 있지만, 공룡이 바닷물을 마셨을 리는 없다. 공룡이 살던 중생대에는 아마 이곳은 호숫가였을 테다. 우리나라에는 중생대 표준화석인 암모나이트가 하나도 출토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한반도 주변에는 바다가 없었기 때문이다. 상전벽해. 1억 년은 그만큼 긴 세월이다.
8~10세 어린이들은 자연사박물관의 학예사들보다 공룡 이름을 더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공룡에 관한 아이들의 관심은 곧 식고 만다. 공룡으로 먹고 살기 힘들어서가 아니다(물론 전 세계적으로 공룡 학자는 100명 정도에 불과하다). 아이들의 관심을 확장시킬 만한 장치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각 공룡의 특징을 설명한 책들은 많으나 공룡이 살던 시대 전체를 보여주는 책이나 전시는 보기 어렵다. 어린이도 충족을 못 시켜주는 상황이니 어른은 오죽할까.
여전히 가슴 속에 공룡을 품고 있는 어른들이 공룡과 그 시대에 대해 진지하게 볼 수 있는 책은 (스콧 샘슨 지음ㆍ김명주 옮김ㆍ뿌리와이파리 발행)가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문학, 우주론, 미생물학, 생태학 등 폭넓은 학문들을 종합해서 공룡을 살아 있는 동물로 그려내는 데 성공한 책이다. 하지만 정반대로 이 책은 너무나 큰 그림을 그리고 있어서 공룡과 각 공룡이 살던 시대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오히려 어렵다. 자그마치 1억 6,000만 년 동안이나 지구 육상 세계를 지배했던 공룡을 아프리카를 탈출한 지 기껏해야 6만 년밖에 안 된 호모사피엔스들이 이해하기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직접 가보는 게 제일 확실하다. 방법은 타임머신을 타는 것. 1억 5,000만 년 전 쥐라기 후기로의 시간 여행 안내인은 고생물학을 전공한 논픽션 작가 두걸 딕슨이다. 여행 출발지는 도쿄, 런던, 뮌헨, 뉴욕으로 제각각이지만, 도착지는 북아메리카 대륙 중서부에 있는 모리슨 평야다.
우리는 시간 여행을 하면서 우선 역동적인 지구의 모습을 보게 된다. 흩어져 있던 지구들이 하나로 뭉쳐진다. 현재 가장 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는 해안선은 점차 대륙 한가운데의 척박한 사막으로 바뀌고, 지금은 사라진 바다와 호수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거기에 거대한 생물들이 살고 있다.
고작 공룡의 부스러기 턱뼈 조각이나 발가락뼈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 게 아니다. 딕슨은 우리를 쥐라기 후기의 모리슨 평야에 내려놓는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살아남아야 한다. 모리슨 평야는 위험이 가득한 땅이다. 덕분에 우리는 실감나게 중생대 생태계와 공룡을 경험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먹을 것을 찾는 일. 어떤 식물을 먹어야 하는지, 우리가 사냥할만한 크기의 공룡은 어떤 것인지, 공룡의 시체로 만들 수 있는 도구는 어떤 게 있는지 그리고 어떤 공룡을 만나면 뒤를 돌아다볼 것도 없이 도망쳐야 하는지를 몸소 익히는 중생대 체험 여행이다.
시간 여행 콘셉트를 사용했다고 해서 과학적인 내용까지 황당하지는 않다. 철저하게 해부학적이고 생태적인 관점에서 설명한다. 공룡이 실제로 변온동물이었는지, 공룡의 피부에는 얼마나 많은 털이 있었으며, 새끼들을 양육했는지, 그 많은 공룡을 다 누가 먹여 살렸는지 등 많은 부분들은 가능성으로만 남아 있다. 딕슨은 단언하지 않는다. 최근의 연구 성과들을 소개하면서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과학적인지만 우리에게 안내한다. 덕분에 독자들은 열린 마음으로 쥐라기 공원을 여행할 수 있다. 상세한 그림 정보와 함께 공룡 이름이 무지 많이 나오는 신나는 책이다.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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