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와 근대화가 성큼성큼 진행되면 신은 무력해진다고 여겨졌다. 특히 극심한 가난이 극복되고, 사회 불평등이 축소되고, 정치적 억압이 없어진다면 종교는 취미로 격하될 것으로 봤다. 사실 서유럽의 으리으리한 성당은 유령의 성처럼 텅텅 비어갔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비율은 20% 이하에 불과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요즘 세계적으로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종교의 귀환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2만3,000명의 기독교인이 새로 생겨나고 있고,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성령강림운동과 개신교 종파들이 약진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한국을 중심으로 기독교는 놀라운 성공 사례를 기록하고 있다.
출세작 (1986)로 유명한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69) 뮌헨대 교수는 2008년 내놓은 사회학 에세이 에서 이 같은 종교의 귀환 현상에 천착했다. 근대는 '종교의 탈주술화'(막스 베버)와 '세속화'(카를 마르크스, 에밀 뒤르켐)로 시작됐다. 그런데 근대화가 세계적으로 확장된 지금, 거꾸로'종교의 귀환'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저자는 근대화 즉 기술과 문명이 발달하면서 오히려 사람들은 사회 생활에 더 불안해하면서 신앙에 매달리게 된다고 보고 있다. 단, 신앙의 형태는 바뀌어서 기존 제도화된 종교보다 개개인 내면의 신앙을 강조하는 '종교의 개인화'가 더 큰 줄기를 이루기 시작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사람들은 동서양의 다양한 종교적ㆍ영적 전통으로부터 종교적 내용과 수행 방식을 임의적으로 차용하고, 그때그때 유행하는 심리적 실천 방식을 거기에 덧붙여 '자기만의 신'을 만들어 낸다. 영혼의 충만함이나 자아 발전 등 개인의 만족을 위해서다.
저자는 "종교의 개인화 즉 자기만의 신은 인간이 신자인 동시에 신이 되는 종교"라며 "이 종교는 다른 종교들을 '진정한 자아를 찾는 종교'로 변화시키고, 과거 천국에 과도하게 의존하거나 강요했던 것들을 자기 자신의 삶이라는 왕국에서 찾도록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가 보기에 "계몽을 통해 인간은 신으로부터 벗어나 모든 영역에서 자율성을 가질 수 있다"고 했던 세속화 테제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가톨릭 등 기존 종교가 진리의 절대성을 앞세워 십자군전쟁 등 야만적 폭력을 행사했지만, 세속화로 생겨난 종교의 개인화는 진리와 함께 평화도 똑같이 우선시하면서 종교 간 관용과 갈등 완화의 씨를 뿌렸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막스 베버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말한다. "근대 초기에 종교적 개인주의를 긍정함으로써 의도하지 않은 부수효과로 '자본주의 정신'이 출현했다. 마찬가지로 21세기에는 종교의 개인화를 급진적으로 긍정함으로써 세계사회의 세계시민정신이 출현할 수 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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