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오랜 시간 경제 지상주의와 성공을 독려하는 세대와 시대를 지내오며 문화는 잘 사는 사람,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 애초부터 특별히 조예가 깊은 사람만이 누리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인식이 있어왔던 게 사실이다. 당장 생활 형편이 중요하지 문화는 무언가 사치스럽고 부차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개인의 삶도 지배해 왔다. 그러나 문화는 밥 먹고 사는 문제 못지 않게 우리의 정신과 인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힘을 주고 수많은 편익을 주는 것임은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문화는 사회적으로도 누구나 차별 없이 소외되지 않고 누릴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다행히 최근에는 이런 맥락에서 문화와는 무관할 듯한 이른바 사회 취약계층에게도 문화를 접하고 활용하도록 돕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노숙인들이 발레와 인문학을 접하게 되고 노인들에게는 문화를 통한 건강한 여가와 노후를 유도하고 있다. 교정시설에서도 합창과 밴드가 인기가 있다. 저소득층 아동들이나 취약한 환경에 있는 친구들에게도 문화체험이 활발해지고 있고, 농어촌 주민들에게도 문화는 익숙한 것이 되고 있다. 다문화 가정의 공동체 적응에도 문화가 힘을 보태고 있다. 이른바 문화복지의 개념이 일반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 이른바 '불우이웃'이라 하여 무언가 경제적으로 생활의 편익상 시혜를 베푸는 관점에서 '그들'을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함께 사는 이웃으로서 사회 취약계층도 물리적, 경제적 측면 못지않게 정신적, 정서적으로 누릴 권리에 대해서도 배려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를 위해 각종 바우처의 제공이나 대상을 찾아가는 프로그램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 사회복지와 문화기획의 접점에 있는 문화복지사나 예술강사들도 각종 복지시설이나 취약계층을 위한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나 문화향유 프로그램들에 활발히 투입되고 있다.
이제 한해의 마무리가 필요한 시점이 왔다. 그 어느 한해 공사다망하지 않은 해가 없었고, 쏜살같이 가지 않은 해가 없으니 달력이 한 장 남고 보면 누구나 아쉬움과 함께 이런 저런 일로 몸과 마음이 바빠지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히 세밑이 되면 송년회다 연말연시다 하여 각종 흥겨운 행사도 많고 즐거운 만남도 잦아지지만, 이 때 또 주위를 돌아보고 온정을 나누는 일도 집중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각종 기부와 모금이 연례행사로 벌어지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자선행사나 선행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래서 연말이면 각종 세밑 온정이 그래도 가장 활발하게 나눠지는 시기이다. 연탄을 배달하고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며 각종 위문품에 기부와 모금이 많아지는 것은 중요하다. 이런 활동과 함께 평소 문화를 접하기 어려운 이웃들에게 문화적인 혜택도 집중되는 시기가 될 수 있기를 하는 기원도 해본다. 상대적으로 헛헛한 마음과 소외감을 문화예술이 채워주고 새로운 힘을 줄 수도 있다. 예술을 통한 마음의 감동이나 웃음은 밥보다 더 좋은 마음의 양식일 수도 있고, 그 힘으로 또 팍팍한 삶에 용기와 희망을 가질 수도 있다.
문화예술계는 또한 가장 흥행에 좋은 시기가 이 때이다. 일 년 중 가장 큰 대목인 이때를 겨냥하여 수많은 공연과 전시가 개최된다. 이 때는 누구나 왠지 영화나 콘서트 한편 정도는 볼 기분이 드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래서 평소 문화생활에 적극적이지 않던 사람들도 기꺼이 관객이 된다. 그런데 이런 기회가 우리 주위의 어려운 이웃에게도 제공되어 그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며 그 안에서 문화를 통해 온정이 퍼지기를 기원해본다. 많은 문화행사들이 여유가 있다면 사회공헌 차원에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좌석이 관람이 제공되어 이들이 문화를 통해 삶의 자존감을 얻고 위로와 치유를 받아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는 계기를 가지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선철 용인대 교수 ·감자꽃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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