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사' 최철한이 생애 첫 명인 타이틀을 품에 안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최철한은 지난 26일 바둑TV대국실에서 벌어진 제41기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 결승 5번기 제3국에서 이세돌을 불계로 물리치고 종합전적 2승1패를 기록했다. 앞으로 남은 두 판 중 한 판만 이기면 국내 바둑계 최고 영예인 마흔 한 번째 명인으로 등극하게 된다.
이날 대국은 앞서 벌어진 결승 1, 2국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전투의 연속이었다. 이세돌은 초반부터 최철한을 거세게 몰아붙여 일찌감치 형세를 유리하게 이끌었다. 그러나 두 선수가 각자 2시간의 생각시간을 다 쓰고 초읽기에 들어갈 즈음 최철한의 승부수가 작렬했다. 난전의 명수 이세돌도 시간에 쫓긴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반격을 당하자 그만 집중력이 흔들렸고 결국 뜻밖의 실수를 저질러 패배를 자초하고 말았다.
최철한은 이세돌에게 지난해 올레배 결승전과 삼성화재배 준결승전에서부터 이번 명인전 결승 1국까지 무려 6연패를 당하고 있었는데 결승 2국에 이어 3국에서도 쾌승을 거둬 지긋지긋한 연패의 사슬에서 시원하게 풀려난 셈이다.
그러나 '최철한 명인'의 탄생을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명인전은 지난 40기 동안 조남철, 김인, 서봉수,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박영훈 등 단 일곱 명에게만 정상을 허락한 매우 보수적인 기전이다. 더욱이 상대가 위기상황에서 더욱 힘을 내는 이세돌이기에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라는 게 바둑계의 중론이다.
아직까지 두 선수의 상대 전적은 이세돌이 30승18패로 크게 앞서고 있다. 그러나 프로의 세계에서 과거 전적이란 그리 큰 의미가 없다. 특히 이번 결승 2, 3국에서 최철한이 이세돌의 강공에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하게 맞서 끝내 승리함으로써 드디어 최철한이 '쎈돌 격파법'을 터득한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한편 다음 대국까지 보름 이상 긴 휴식기간이 있다는 점도 승부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명인전 결승 4국은 다음달 14일에 열리고 2대2 동률이 되면 이튿날인 15일 바로 최종국을 치러 마지막 승부를 가린다.
그동안 이세돌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당장 이번 주말에 소속팀인 신안천일염과 정관장의 플레이오프 1, 2차전에 출전해야 하고, 다음날 바로 전남 신안으로 이동해 12월 3일 조한승과 국수전 도전 1국을 벌인다. 이튿날 다시 서울로 돌아와 2~3일 쉬고 나면 주말(7~8일)엔 다시 플레이오프 3차전이 기다린다. 그게 끝이 아니다. 다음날(9일) 곧바로 중국행 비행기를 타고 장쑤성 쑤저우로 날아가 10일부터 12일까지 3일간 연속해서 탕웨이싱과 삼성화재배 결승전을 치러야 한다. 그리고 나서 13일 귀국, 14일 명인전 결승 4국을 갖는다. 웬만한 사람들은 대국은 커녕 그냥 여행 다니기조차 힘들 정도의 빡빡한 일정이다.
이세돌이 원래 몸이 바쁠수록 더욱 힘을 내는 스타일로 과거에도 한국과 중국을 하루걸이로 오가며 시합을 가진 게 한 두 번이 아니지만 그도 이제 서른을 넘긴 나이여서 체력적인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반면 최철한은 12월 2일부터 7일까지 부산에서 열리는 농심배 2차전 외에 다른 일정이 없다. 농심배에는 강동윤이 먼저 출전하지만 어쩌면 다음 순서가 최철한이 될 지 모른다. 하지만 농심배는 속기전이어서 체력 부담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 같다.
따라서 체력 면에서는 최철한이 다소 유리한 입장이지만 모처럼 2, 3국에서 연승을 거둬 상승세를 탔는데 보름 이상 휴식기간을 갖는다는 게 썩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과연 2주간의 긴 휴식이 두 선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지도 무척 흥미 있는 관심거리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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