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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폭탄테러 빈발하던 비극의 땅에 갈등 치유의 희망을 틔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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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폭탄테러 빈발하던 비극의 땅에 갈등 치유의 희망을 틔우다

입력
2013.11.2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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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북동부 키르쿠크주(州)는 1932년 독립 이래 한시도 바람 잘 날 없는 이라크에서도 가장 뜨거운 갈등의 땅이다. 이곳은 나라 없는 세계 최대 소수민족 쿠르드족의 터전이자 이라크 원유의 대부분이 생산되는 경제적 요지다. 이 알짜배기 땅을 근거지로 독립을 쟁취하려는 쿠르드족과 이를 허용치 않으려는 이라크 지배자 아랍족의 충돌로 인해 키르쿠크 역사는 비극으로 얼룩졌다.

쿠르드족을 박해하던 사담 후세인 정권이 2003년 축출된 후로도 키르쿠크의 사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쿠르드족이 최대 민족(인구 40%)으로 그럭저럭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아랍족(35%), 투르크멘족(터키계ㆍ25%) 주민의 견제가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2011년 말 미군 철수로 치안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아랍계 무장조직의 테러가 빈발하고 있다. 지난 6개월 동안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가 이 지역에서 일으킨 테러만 해도 차량 폭탄테러 22번에 자살 폭탄테러가 4번이다.

이 암울한 땅이 그러나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하루 수십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테러의 강도가 조금씩 약화되는 와중에 새로운 도로, 다리, 수도망이 곳곳에 건설되고 있다. 최근 키르쿠크를 취재한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FP)가 "미세하지만 지나칠 수 없는 진전"이라고 표현한 변화의 중심에는 2011년 4월 취임한 정력적인 주지사 나즈말딘 카림이 있다.

키르쿠크 태생의 쿠르드족인 카림은 2010년 귀향하기 전까지 미국 메릴랜드주 실버스프링에서 신경외과 전문의로 활약했다. 그렇다고 그가 고향을 등지고 해외에서 안락하게 살아온 인물이라 속단하면 곤란하다.

이라크 모술에서 의학을 전공한 카림은 쿠르드 무장반군 페쉬메르가에 가담해 1970년대 후세인 정권과 맞서 싸웠다. 무장투쟁이 패배로 일단락되자 그는 쿠르드 독립운동 지도자 무스타파 바르자니의 미국 망명길에 주치의로 따라나섰다. 미국에서 그는 워싱턴 쿠르드협회 수장을 맡아 망명한 동족을 위해 봉사하는 한편 신경의과의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이라크에 돌아와 국회의원이 된 그는 의회의 무력함을 절감하고 고향 키르쿠크의 지방정치에 눈을 돌렸다. 쿠르드족이 장악한 주의회는 공석이던 주지사 자리를 그에게 맡겼다. 카림이 모셨던 무스타파 바르자니가 쿠르드 자치정부(KRG) 수반인 마수드 바르자니의 부친이란 점도 그의 정치적 자산이 됐다.

카림은 취임 직후 관료주의에 물든 주정부를 대대적으로 개혁했다. 오랜 미국 생활에서 익힌 합리성, 의사로 수십년간 분주하게 살아오며 체화한 업무능력을 바탕으로 그는 구태에 물든 이라크 지자체장의 전형을 타파하며 민심을 얻었다. 관료와 업자의 협잡이 판치던 정부조달사업의 투명성을 높인 것은 그 성과 중 하나다. 키르쿠크 공무원들은 이제 계약업자가 납품가를 부풀렸는지 직접 실사해 점검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정부사업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와 요구를 접수하고 있다.

치안 개선과 지역 투자예산 확보는 카림의 역점 과제다. 그는 이 과정에서 쿠르드족이 다수이기는 하나 KRG 소속은 아닌 키르쿠크의 중간자적 입장을 잘 활용하고 있다. 예컨대 그는 KRG와 충돌을 불사하며 민족 간 갈등 해소에 매진하고 있는데, 이것이 아랍족 테러를 줄이는 지름길이자 주의 돈줄을 쥔 아랍계 중앙정부의 환심을 얻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키르쿠크에 원유ㆍ가스 생산량에 따라 제공하는 돈은 주 예산의 95%에 이른다. 올해 7억6,300만달러였던 정부의 오일달러 배당금은 카림의 로비 덕분에 내년 5배로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불가근불가원. 정부가 치안 강화를 구실로 쿠르드족 탄압에 앞장섰던 후세인 시대 장성들을 수장으로 앉힌 치안본부를 키르쿠크에 세우려 했을 때 카림은 강력히 저항했다. 대신 KRG로부터 주의회의 통제를 받는 조건으로 쿠르드족 민병대를 지원 받았다.

물론 키르쿠크의 치안과 경제가 기본적 수준에 올라서려면 여전히 갈길이 멀다. FP는 그러나 "장래에 수십억달러의 오일머니가 투입되고 지도부가 이를 현명하게 쓸 능력과 주민들의 지지를 갖췄다는 점에서 키르쿠크는 희망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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