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일방적인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에 따른 갈등으로 한중관계가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우리 정부는 28일 열린 한중 국방전략대화에서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이어도 상공까지 확장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중국에 맞불을 놓았다. 이로써 이어도 상공은 한중일 3국의 방공식별구역이 겹치면서 동북아 분쟁지역으로 급부상할 조짐이다.
초강수 의도는
이날 대화에서 우리 정부가 CADIZ 선포에 대해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정도의 반응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KADIZ에 이어도 상공까지 넣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중국에 밀릴 수 없다는 절박함에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여기에는 미국과의 공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26일 CADIZ에 B-52 전략폭격기를 띄워 무력시위를 벌인 것에 맞춰 우리도 중국 흔들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현 정부 들어 밀월관계로 불릴 만큼 한중관계가 순항하던 흐름에 찬물을 끼얹더라도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중국이 한국의 요구를 수용해 CADIZ를 변경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우선 CADIZ 선포는 중국 정부가 미일 양국을 겨냥해 동중국해의 전략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조치다. 또 어떤 이유에서든 한번 정한 CADIZ를 축소할 경우 대외적인 굴복으로 비쳐 중국 지도부는 내부의 거센 반발과 이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KADIZ를 이어도까지 확장하는 초강수를 던졌지만 오히려 무리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중국이 맞대응 차원에서 동중국해에 이어 서해에도 CADIZ를 선포할 경우 대북 방어태세가 흔들려 한반도가 직격탄을 맞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김흥규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방공식별구역 문제의 본질은 중일 갈등이어서 우리가 먼저 공세적으로 나갈 필요는 없다"며 "중국 정부가 이미 대화로 풀자는 입장을 밝힌 상태에서 전략적 깊이가 없는 우리 정부의 표피적 대응"이라고 말했다.
국익 고려한다더니
정부는 당초 KADIZ에 이어도를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국방전략대화를 거치면서 돌연 입장이 바뀌었다. 부처간 충분한 조율이 부족해 보이는 이유다. 정부 관계자는 "국방부 발표를 보고서야 정부 입장이 정해진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이에 국민여론에 떠밀려 졸속으로 대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어도 뿐 아니라 마라도와 홍도까지 KADIZ에서 제외된 것으로 전해지면서 정부로서도 더 이상 신중론에 머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정부의 저자세 외교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서둘러 입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중 양국관계에 군부 입김이 세지는 것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있다. 중국이 최근 당정군의 상위기구인 국가안전위원회 신설 방침을 밝히면서 군부의 불만이 고조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CADIZ를 선포했고, 한국에서도 군 당국이 강경조치를 주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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