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으로 긴장이 높아가는 동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의 항공모함 전단과 일본 전함들이 같은 작전반경 안에서 동시에 항해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중국의 첫 항모 랴오닝호 전단은 26일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항을 출발, 27일 동중국해를 거쳐 28일 남중국해로 진입했다. 미국 핵항모 조지 워싱턴호 전단은 27일 동중국해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전함들과 연합훈련을 했다.
전투기 수십대를 탑재한 항공모함과 순양함, 구축함, 잠수함 등으로 이뤄진 미중의 항모 전단이 조우하지는 않았지만 문제가 된 해역에 양국 해군의 화력이 집중된 것은 초유의 일이다. '떠 다니는 군사기지'로 불리는 조지 워싱턴호는 엄청난 무력과 1,000㎞에 달하는 작전 반경을 갖춰 웬만한 국가의 해ㆍ공군력을 능가한다. 뉴욕타임스는 "갈등이 심각한 해역 주변에 이 같은 군사력이 한 데 모이면 실질적 오판의 위험을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지 워싱턴호는 필리핀의 태풍 피해 지역에 투입돼 재난구호 작전을 하다가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직후인 25일 동중국해로 이동 배치됐다. USA투데이는 조지 워싱턴호 항모 전단과 일본 전함들이 27일 방공식별구역 해역에 도착해 연례 연합훈련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조지 워싱턴호 항모 전단은 이지스 순양함과 이지스 구축함 3척, 해양초계기, 정찰기, 잠수함으로 구성됐다고 미 해군은 발표했다. 해상과 공중 작전이 병행되는 미일 연합훈련은 이미 계획된 것이긴 하나 훈련 해역이 중일 영유권 갈등의 중심인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주변으로 알려져 사실상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훈련 내용도 일본이 공격을 받을 경우 전투기, 전함, 잠수함을 투입해 방어하는 것이다. USA투데이는 "동중국해 연합훈련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에 대한 직접적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통상 공개를 하지 않는 항모 작전 해역을 공개한 것 역시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미국의 예상 밖 강수에 랴오닝호는 28일 센카쿠 해역 대신 대만해협을 거쳐 남중국해로 진입했다. 랴오닝호는 051C형 탄도구축함인 115선양함과 116스자좡함, 054A형 탄도호위함인 538옌타이함과 550웨이팡함 등과 선단을 이뤄 대만해협을 통과, 28일 남중국해에 진입했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일각에서는 랴오닝호가 센카쿠 주변 해역을 지나며 무력시위를 할 경우 미중일 3국의 긴장감이 통제 불능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우려했었다. 그러나 랴오닝호는 대만해협에서 중국에 가까운 항로를 이용, 남중국해에 진입했는데 이는 미일을 추가적으로 자극하지는 않으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미중이 당장 충돌할 가능성은 적지만 종종 우연한 사건이 지도자들에게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아사히 신문은 일본도 중국에 사전 통보를 하지 않은 채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을 비행했다고 28일 보도했다. 자위대와 해상보안청 소속 항공기들은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한 뒤 동중국해 상공에서 초계활동 등의 임무를 수행했으며 중국은 전투기 긴급발진 등의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날 양위쥔(楊宇軍)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방공식별구역 선포를 당장 철회하라는 일본의 주장과 관련해 "이미 1969년 방공식별구역을 공포한 일본이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에 대해 불평할 권리는 없다"며 "일본이 방공식별구역을 철회하면 우리도 44년 후 이 문제를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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