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시 국가들은 소극적 평화를 구축한 다음 국내 안정을 다지고 그 위에서 더 활발한 외교를 전개하게 된다. 그 때 외교는 대체로 균형외교를 취한다. 어떠한 나라는 지정학적 고려에서 고립외교도 취한다.
영국이 전통적으로 유럽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균형외교를 절묘하게 수행했다. 러시아와 프랑스가 유럽의 평화를 위협하자 오히려 독일ㆍ오스트리아ㆍ이탈리아 3국협상에 개입해 밸런스 역할을 했다. 1차 대전 때 독일 포위전을 위해 유럽 대륙에 개입했다가 유럽이 평정을 되찾은 후 브리튼 섬으로 복귀했고, 그 후 2차 대전 때는 독일의 나치 세력을 진압하고 평정을 찾은 후 복귀하는 균형외교를 취했다. 그 외에도 러시아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려고 하자 보스포러스 해협을 봉쇄해 러시아의 대 불가리아 건설을 좌절시키고 균형외교를 폈다.
21세기 동북아에서도 19세기와 20세기 중반에 일어났던 유럽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 아베 정권이 미국을 앞세워 재무장하겠다는 형세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 형세는 바로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고리를 통해서이다. 아베 정권은 오바마 정권과 밀착하면서 헌법9조의 개조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그 위에서 전수방어 전략에서 전수공격 전략으로의 전환을 겨냥한 군비증강을 하겠다는 기세다. 미국은 일본을 주춧돌로 삼아서 중국 견제를 하겠다는 의도다. 제2의 아시아 회귀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밀착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케 하는 것이며, 미일동맹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가게 될 것이다. 일본의 일방적인 상승세는 과거 군국주의를 회생시켜 한일이 풀기 어려운 국면으로 들어갈지도 모른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일본을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에 가입시킨다면 동아시아에서 우월적 미일 전략적 동맹관계가 성립되어 어느 순간 한반도를 위시한 지역 평화를 위협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지난 세기의 중국은 한반도를 자신의 예속적 지역 또는 변방 지역 정도로 취급하면서 안정을 유지시키는 것을 기조로 삼았다. 그 동안은 북한을 중국의 동북방지역을 보호하는 완충지역으로 고정시키고 이를 유지하는데 신경을 썼다. 그 후 외교 관계를 수립한 후 남북한의 존재를 재인식, 북한을 완충지역 그리고 남한을 주요한 경제 교류의 대상으로 생각해왔다. 한중 관계가 외교관계 수립 이전에 비해 크게 격상된 관계로 발전된 것은 사실이다. 남쪽의 미군 주둔을 인정했던 등소평의 발언이나, 그 후 "문을 닫되 잠근 채 놓아두지 말라"고 조언한 전 중국 외교부 장관의 발언이 모두 중국의 대 한국 외교의 이중성을 들어 낸 표현들이다.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을 위시한 유엔안보리 표결에 대한 중국 대표의 자세 등은 중국 외교의 이중성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시진핑은 지난 6월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거쳐 양국 협력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재인식하고, 북핵개발 저지에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합의 했다. 그 후 과거와는 약간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행동은 보이지 않고 있다. 아직도 6자회담을 재개하지 못하는 것이 그 증거다. 중국 외교의 이중성은 과거 장개석 총통의 상해-중경 한국임시정부에 대했던 태도와도 유사하다.
21세기 초엽 유동하는 동북아 질서에서 한국은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고, 주변 4강이 함께 호흡하고 수용할 수 있는 견실한 균형외교를 전개할 것을 매우 크게 요구된다. 에너지 개발을 위한 러시아, 6자회담 조기 재개를 위한 중국, 집단적 자위권 정책을 수립해 전개하고자 하는 일본, 그리고 아시아에로의 재회귀를 꿈꾸는 미국 등 4강의 균형적 지지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균형외교만이 '카펫평화'를 달성할 수 있다. 레드 카펫위에서는 전쟁이 아니라 진지한 대화가 오가고 동시에 그 대화를 통해 단순한 물리적 폭력의 부재를 넘어서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안정과 평화 그리고 상호번영을 수반하는 평화, 즉 '카펫평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카펫평화가 동북아 전체를 위한 참된 평화다. 미래 평화 통일로 가는 길이다.
허만 부산대 명예교수ㆍ 한-유럽연합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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