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를 계기로 동북아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G2의 충돌이 본격화하고 있다. 국제정치와 군사적으로는 미국,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최대의 연관을 갖고 있는 우리 입지는 미중 패러독스에 놓여 있는 격이라 박근혜정부의 외교력이 중대 시험에 들게 됐다.
당초 중국이 지난 23일 일방적으로 선포한 CADIZ는 우리 관할권의 이어도가 포함된 탓에 한중간 양자 갈등 소재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미국의 전략폭격기 B-52 두 대가 26일 CADIZ 무력화를 노리고 동중국해 상공에 출현하면서 동북아 긴장 수위가 크게 고조되고 있다. 사실 중국의 CADIZ 선포는 미국과 일본을 향한 도발 성격이 강하다. 군 소식통은 "공산권 국가들이 그 동안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중국의 전략은 단순한 영공 주권 사수 이상의 무엇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조치는 표면적으로 일본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관할권 무력화를, 속내는 미일이 함께 추진하는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맞대응 차원으로 보인다. 미국이 지난달 미일 외교ㆍ국방장관(2+2) 회담에서 일본의 집단적자위권 추진에 손을 들어준 것도 중국을 겨냥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팽창주의적 움직임은 경제ㆍ군사력 신장을 바탕으로 이제 미국과 힘의 대결을 펼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자세전환은 시진핑(習近平) 체제 출범 이후 더욱 공고해졌다. 지난 12일 폐막된 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공군과 해군, 전략미사일 부대의 강화를 천명하는 등 현대전 수행능력을 끌어올린 게 대표적이다.
외교 당국자는 "중국은 도광양회(韜光養晦ㆍ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로 대표되는 전통적 외교 정책에서 벗어나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상에 걸맞게 국가 이익을 지키려는 적극적 개입주의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중국은 경제적으로도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경쟁을 벌이는 등 전방위 충돌양상이다.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맞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추진하는 등 경제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미중의 동북아 패권 경쟁이 가열되면서 우리 외교의 방향타를 잡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 정부는 CADIZ 선포와 관련, 불인정을 선언하고 미국과 긴밀한 협의에 나서는 등 공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26일에도 우리 해군 해상초계기(P3-C)가 중국에 통보 없이 이어도 상공을 초계 비행했다. 하지만 자칫 무력충돌 등 미중 갈등이 심각해질 경우 한국은 입지 선정에 곤란을 겪을 우려가 적지 않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이날 한국국방연구원(KIDA) 주최 포럼에서 "방공식별구역 문제는 이미 어려운 (동북아 지역)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며 "영토갈등과 역사문제가 민족주의와 결부되면 역내 상황은 급속히 악화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정부의 곤혹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나는 대목이다.
사실 이명박정부는 한미동맹 강화에 역점을 뒀으나 박근혜정부 들어서는 경제를 바탕으로 중국과 가까워지는 등 균형외교적 자세를 취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집단자위권과 과거사 문제로 한ㆍ미ㆍ일 3각 공조에 균열조짐을 보이자 미국이 우리측에 불만을 드러내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미국과 중국을 다 만족시키려다 보니 할 말을 해야 할 때도 입장을 확실히 정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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