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승합차를 12년쯤 몰고 있다. 몇 달 전에 차가 텅텅 소리가 나서 공업사에 들렸더니 원인을 모르겠단다. 늘 그런 것이 아니고 가끔 그러니 그 사람도 나도 괘 난감했다. 몇 번의 시운전 끝에 말썽 난 곳을 찾아 재생품을 끼워 차를 살렸다. 또 얼마 전 광주공연을 가는데 차가 또 텅텅거렸다. 갓길에 세워 밑을 쳐다보니 이번엔 배기통이 끊어졌다. 광주의 카센터를 찾아 녹슨 배기통을 갈았다. 오늘 차가 또 고장 났다. 엔진오일이 샜다. 또 카센터를 가니 고속펌프를 갈아야 한단다. 그리고 라디에이터도 물이 새고 호스도 갈아야 한단다. 그러면서 나에게 언제까지 타실 거에요? 이런다. 내가 그랬다. 끝까지요.
몇 달 전 차 밑 소음의 원인을 못 찾아 고생할 때 자동차회사 연구실에 다니는 동기한테 전화로 증세를 상담했다. 대뜸 몇 년식이지? 해서 2002년식이야 했더니 오래 탔네 그런다. 인제 하나 둘씩 고장이 나기 시작할 거야, 사람도 그렇잖아 그런다.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그 생각에 빠졌다. 사람도 그렇잖아라는. 갑자기 밀려드는 쓸쓸함 내지 씁쓸함.
사람의 연식. 언제까지 사실 거예요?
사람이 차와 별반 다르지 않다면 하나 둘씩 고장이 나는 건 자명하다. 그러나 사람은 또 사람이어서 어느 한 곳을 재생품이나 신품으로 갈아치울 수가 없다. 고쳐 쓸 밖에. 인간이 부속을 아무리 잘 관리한다하더라도 서서히 성능과 효율은 떨어질 것이고 녹은 슬 것이고 어느 순간 가던 길 위에서 멈출 것이다. 언젠가 옛날 사람들은 치아 때문에 일찍 죽었다, 라는 가설을 세운 적이 있다. 이 한 개가 고장 나 빠지면 양쪽의 성한 이도 영향을 받아 머지않아 빠지고 그러면 제대로 못 씹어 넘기니 위에 탈이 나고 간이나 대장도 불편해지고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 쌓이고 그러다 병 되고 하는 식으로. 인간의 죽음이 만일 쾅하고 부딪혀 부서지는 마차처럼 한 번에 폭삭 무너진다면 얼마나 박력이 있을까만 그럴 일은 사고사 말고 잘 없다. 결국 우리는 연식에 따라 서서히 폐차를 염두하면서 살아야 한다. 서서히 몰락하는 나를 느끼며 매일을 당면해야 한다. 음.
정신도 연식이 있을까. 기형도 시인의 노인들이라는 시 중에 '부러지지 않고 죽어있는 가지는 추악하다'는 구절이 있다. 그 문장이 참 인상적이다. 말 그대로 죽은 가지는 부러져야 자연스럽다. 그래야 새 가지도 난다. 버티면 딱해지고 추해진다. 그렇지 않은가. 어디 몸뿐이랴. 정신도 마찬가지다. 연식과 상관없이 영원히 청춘과도 같은 불굴의 정신과 참신한 생각을 소유한 듯 하지만 실제로는 죽어있는 정신과 생각이 의외로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죽은 정신과 생각이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여 새 정신과 생각에게 자리를 내줄 마음이 없다는 데 있다. 그것은 곧장 탐욕으로 모양을 바꾸고 경륜이라는 가면을 써서 버틴다. 누가 강의에서 그랬다. 해봐서 안다와 겪어봐서 안다를 경계해야 한다고. 또 누가 그랬다. 아는 것도 모른다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나는 도무지 차를 바꿀 마음이 없다. 형편도 형편이지만 내 차를 바꾼다는 것이 이상하리만큼 어색하다. 가지고 싶은 차는 있지만 내차를 버리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마찬가지다. 나는 내 연식에 다만 충실하고 싶다. 몸의 한 군데가 고장이 나면 그곳을 잘 고쳐 쓰고 생각이 병들면 얼른 갈아 끼우거나 내쫓아서 다른 생각이 들어오게 만들고 싶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가차없이 딱 부러지기를 원한다. 그래서 나는 나보다 연식이 높으신 분들의 삶을 눈여겨 관찰하고 존경하려 애쓴다. 그분들의 연식이 나에게 오는 것은 필연 아닌가. 다만 클래시컬한 간지는 좀 났으면 좋겠다. 연식이 오래되더니 무난해졌네. 더 편해졌어, 그런 말 듣고 싶다. 그리고 욕심과 이기심도 버려서 마음의 한 구석을 비워두고 싶다. 그 자리를 사랑이 차지한다? 완전 부라보!!!
고선웅 경기도립극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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