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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에 빼앗긴 아빠…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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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에 빼앗긴 아빠… 보고 싶어"

입력
2013.11.26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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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26일 필리핀 반타얀 섬의 한 학교에서 만난 아나메이 마따(15)양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평화롭던 섬을 강타한 초강력 태풍 하이옌은 마따양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아버지(38)를 한 순간에 앗아갔다. 할머니와 부모, 동생 4명 등 일곱 식구의 보금자리였던 바닷가 판자집도 강풍에 송두리째 날아갔다. 아버지의 부재가 아직 믿어지지 않는 듯 마따양은 인터뷰 내내 눈물을 거두지 못했다.

태풍이 몰아 닥친 지난 8일 오전 9시쯤. 작은 어선을 빌려 근해에서 고기 잡는 일로 가족들을 먹이던 아버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항을 위해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태풍을 자주 접한 경력 20여년의 베테랑 어부는 하이옌의 맹렬한 기세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집채만한 파도에 휩쓸렸고 이내 생지옥이 된 마을 해변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장례를 치를 돈이 없어 시신은 이튿날 바로 마을 공동묘지에 묻혔다.

하이옌이 할퀴고 간 반타얀 섬에서는 사망자 24명, 부상자 수천명이 발생했다. 사망자 수로 보면 타클로반(4,000여명), 오르목(33명)에 이어 세 번째로 피해가 컸다. 반타얀 시에 따르면 물적, 인적 피해는 가뜩이나 살기 힘든 빈민층에 집중됐다. 섬 주민의 85%가 농수산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빈민층이다. 마따양이 사는 바랑가이(면 규모의 마을) 빠따오에서는 4,000여 주민들 가운데 75%가 어업, 25%가 농업에 종사한다.

가리 페르난데스 반타얀시 여행담당관은 "이번 태풍으로 어선, 어구가 완전히 망가지고 옥수수 경작지가 쑥대밭이 돼 빈민층의 유일한 돈벌이 수단이 사라졌다"며 "복구에 워낙 많은 비용이 들어 주민들 모두 자포자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시는 농작물 피해 1억4,881만 페소(한화 36억282만원), 어선과 어구 피해도 5,117만 페소(12억3,835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빈민층들의 집이 값싸고 구하기 쉬운 얇은 판자, 대나무, 양철판 등으로 지어져 특히 피해가 컸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타얀시 코디네이터인 잔잔씨는 "피해를 입지 않은 건물은 외벽과 지붕 전체를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만든 집"이라며 "지금까지 필리핀을 지나간 태풍들은 판자집을 부술 정도로 위력이 세지 않았지만 하이옌은 달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필리핀 정부는 반타얀 섬에 대한 지원에 손을 놓고 있다. 태풍으로 아버지를 잃은 마따양과 어머니를 잃은 쥬디스 소리바(15)양은 정부 지원이 없어 주말마다 이웃집 어구를 손질해주고 받은 돈으로 근근이 끼니를 잇고 있다. 집이라고는 부서진 집터에 판자로 벽을 세우고 파란 천막용 비닐을 올린 게 전부다.

구호단체와 의료지원단에 자신의 땅을 선뜻 내 준 빌라 나띠비다드 전 바랑가이 바오 지방자치단체장은 빈민층 피해 복구 지원을 외면하는 정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나띠비다드씨는 "외부에서 지원한 구호기금 등이 있지만 부패한 관료들이 중간에서 다 떼어먹고 있는 게 필리핀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구호단체와 의료지원단이 정부를 거치지 않고 피해 지역을 직접 도와주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반타얀=글·사진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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