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도 종북, 저기서도 종북, 도처에서 종북이다. 천주교 전주교구 박창신 원로신부의 연평도 발언 이후 종북 논란이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다. 급기야 지난해 11월 검찰 내 항명사태로 물러났던 한상대 전 검찰총장까지 나서 26일 "재직 시절 검사 전원의 종북 성향을 조사, 한 명을 사퇴시키고 한 명을 징계했다"고 말했다. 전교조나 민노총에 종북 딱지가 붙은 지 오래됐고 중ㆍ고교에서 통일과 분단을 심층 분석하는 교사는 종북으로 찍힌다는 말까지 나돈다.
■ 도대체 종북이 뭔가. 한자로 풀면 '따를 종(從), 북녘 북(北)'으로 북한을 따른다는 의미다. 핵 실험과 3대 세습, 인권 탄압으로 정당성을 잃은 북한을 무조건 추종하는 세력을 비판하는 개념이다. 지금은 보수세력이 공세적으로 사용하지만, 원래 종북 논란은 진보세력 내부에서 제기됐다. 2001년 민노당과 사회당의 노선 논쟁에서 사회당이 "북한 조선노동당을 우위에 놓는 종북 세력과는 함께 할 수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종북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 종북 논쟁이 구체적 정치행위로 나타난 것은 2008년 민노당 분당 사태다. 조승수 노회찬 심상정 등 민노당 내 민중민주(PD) 계열이 다수파인 민족해방(NL) 계열을 종북주의로 규정한 뒤 탈당, 진보신당을 창당하면서 종북은 개념을 넘어 실체가 됐다. 당시 PD계열은 2006년 10월 일심회 간첩사건에 연루된 당직자들의 제명을 요구했으나 NL계열이 거부하자 분당을 선택했다. 1980년대 학생운동 시절부터 계속된 NLㆍPD 대립이 폭발한 셈이다.
■ 종북 논란은 보수세력에 호재가 됐다. 진보진영에서 먼저 비판이 제기됐으니, 보수세력은 조작설을 걱정하지 않고 종북 공세를 펼칠 수 있었다. 문제는 과도함이다. 북한 지령을 받는 종북 세력만을 문제 삼는 게 아니라 비판세력이나 진보세력에 마구잡이로 종북 딱지를 붙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만간 북한과 대화를 해야만 하는 국면이 올지도 모른다. 과도한 종북 몰이는 대북정책의 선택지를 극도로 제약할 수 있다. 좀더 길게 보고 유연해졌으면 한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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