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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11월 27일] 정무수석 어디 있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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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11월 27일] 정무수석 어디 있냐는데

입력
2013.11.26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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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편집국으로 정치인들의 책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렇게 욕을 먹어도 출판기념회라는 공인된 정치자금 모금 행사를 빠뜨리고 넘어갈 수 없는 모양이다. 한 야당 중진 의원이 "정치인 생활 십 수년 동안 지금처럼 출판기념회가 성황을 이루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한 걸 보면 올해 유독 심한가 보다. 정치인들이 서로 품앗이처럼 기부를 하고, 알짜 상임위 소속 의원들은 '을'위치인 관공서, 기업들로부터 들어오는 책값 명목의 성금이 적지 않을 터다. 많게는 10억 원까지 걷힌다고 하니 이 기회를 허투루 날리기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출판기념회에 박준우 청와대 정무수석은 얼굴을 비치는 법이 없다고 한다. 정무수석은 어디 있냐고 여야 의원들이 공히 한 소리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새누리당과 청와대의 가교 역할이면 돈도 좀 쓰고, 밥(술)도 사고, 얼굴도 비치고 해야 하는 데 박 수석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이 정부 들어서도 공기업 낙하산 인사가 꽤나 많다고 하지만 여당 의원들 입장에서는 성이 차지 않는지 현오석 부총리에게까지 "챙겨달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걸 보면 정무수석이 제대로 신경을 써주지 않는 눈치다.

이러한 불만은 당청 가교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역할 부재론과 함께 나오고 있다. 급기야 대정부 질문에서 정무장관 제도를 신설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새누리당 노철래 의원은 "지금의 여야 강 대 강 대치 정국은 청와대의 대 국회, 정당, 시민사회의 원만한 관계유지 업무를 담당했던 정무장관의 역할이 상실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즘 여야 중재 역할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서청원 의원이 1990년대 정무장관을 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그런 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그의 책 를 보면 야당 시절의 인연을 바탕으로 막후 협상에 능했던 그의 활약상이 그려져 있다. 수습기자처럼 열심히 뛰었고, 정무장관 판공비도 모자라 지인들에게 받은 후원금까지 동원했다고 하는 걸 보면 가히 술자리 협상이 적잖이 이루어졌을 법하다.

이런 전설 같은 좋은(?) 추억을 갖고 있는, 혹은 귀동냥으로 들었을 여야 의원 입장에서 정무수석이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못마땅할 터이고, 이걸 당청 가교 역할론에 결부시켜 비판이 나오는 것일 게다.

지금 정무수석은 의원들 경조사에 잘 가지 않고 화환도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이게 패거리 정치, 품앗이 정치와 단절하려는 청와대의 의지, 글로벌 스탠더드의 적용이라고 하지만 '갑 문화' '대접 받는 문화'에 익숙한 여의도 정치가 이를 쉽게 인정할 리가 없다. 그러니 여야 의원들 사이에 나오고 있는 이런 저런 불만은 변화에 대한 저항 심리의 한 단면일 것이다. 한 야당 의원은 "외교관 했다며…"라고 하대조로까지 말을 했다는 후문이다. 머슴처럼 일하지 않고 신사처럼 일하려 하느냐는 비아냥조로 해석한다면 텃세의 성격도 없지 않다. 물론 경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애사(哀事)에도 얼굴을 비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냐는 여당 의원들의 항변은 일리가 있다. 애사는 초청을 받지 않아도 간다는 게 풍속의 역사다.

외교관 출신 정무수석 기용이라는 청와대의 실험으로 의원들과 묘한 갈등 기류가 흐르는 분위기다. 역할론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특검 문제가 걸림돌인 지금의 경색 국면은 정치 달인이 달려들어도 풀기 어렵다. 무엇보다 협상의 기본전제인 상황 타개 의지가 여야 모두에게 보이지 않는다. 당사자라 할 수 있는 대통령도 물론이다. 자존심 문제라기보다 정권의 정통성이라는 예민한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청와대는 뒷방에 앉아 여야가 해결하라는 입장이니 경색 국면만 놓고 본다면 정무수석이 조정역을 할 여지가 없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무수석은 대통령에게 쓴 소리를 해야 한다.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가 아니다. 정쟁으로 얼룩진 여의도 정치, 좌표를 잃은 듯한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정진황 정치부장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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