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지난해 4월 내놓은 신형 싼타페. 7년 만에 풀체인지 된 모델답게 확 바뀐 실ㆍ내외 디자인과 함께 IT 시스템과 연계해 운전자가 언제 어디서나 원격 시동, 공조 제어 등의 컨트롤을 할 수 있는 텔레매틱스 서비스 등 대거 적용된 최첨단 사양들로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부각되지 않았을 뿐, 이 차량의 진짜 강점은 연비였다. 표시연비는 기존 15.0㎞(2.0모델, 2WD, 자동미션 기준)에서 14.4㎞로 줄었지만, 이는 연비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었을 뿐 옛 잣대로 환산하면 17.0㎞나 됐다. 기존 모델보다 무려 13%나 향상된 것이다.
고연비의 비결은 고장력 강판에 있었다. 일반 강판보다 무게는 10% 가량 가벼우면서도 강도는 2배 가량 센 철판으로, 자동차 업계에선 최첨단 신소재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알루미늄 등 경량 소재를 이용한 차량들도 등장하고 있지만 강도가 약해지는 문제가 있다"며 "신형 싼타페의 경우 강도와 성능은 강화하면서도 가볍게 제작해 높은 효율을 이끌어 낸 점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형 싼타페는 각종 장비들을 추가 탑재했음에도, 차량 무게는 1,792㎏으로 기존 모델보다 40㎏ 가까이 줄었다. 가벼워진 만큼, 기존 모델과 같은 엔진(184마력)을 쓰고 있음에도 연비는 훨씬 높아질 수 있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신형 싼타페의 고장력 강판 적용 비율은 아우디 등 프리미엄 브랜드 보다 높은 37.7%에 달한다"고 말했다.
26일 출시되는 신형 제네시스엔 이 같은 초고장력 강판이 51%나 적용됐다. 이 초고장력 강판은 단위면적(1㎟)당 60㎏의 힘을 견딜 수 있는 강판. 일반 강판보다 2~3배 가량 강한 셈이다. 회사관계자는 "신차개발 단계서부터 현대ㆍ기아차-현대제철-현대하이스코가 공동으로 신형 제네시스 특성에 맞춰 개발했다"며 "경쟁차와 비교해 강성과 중량에서 월등한 면모를 갖출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경량화는 현재 자동차 업계의 화두나 다름없다. 유럽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거세지는 연비규제도 결국은 경량화 문제로 귀결된다. 기름을 획기적으로 덜 먹는 엔진개발이 한계가 있는 만큼, 연비를 높이려면 차량 자체를 가볍게 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연비 때문에 안전성을 희생시킬 수는 없는 일. 결국 더 가볍고, 하지만 더 강한 강판소재를 쓰느냐 못 쓰느냐 여부가 자동차의 생사를 좌우하는 셈이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지난 23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를 찾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 회장은 이 자리에서 "강판 품질이 곧 자동차의 품질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신형 제네시스를 통해 유럽시장 공략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정 회장으로선 '가볍지만 강한 강판'을 승부처로 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동차 업체들은 엔진이나 디자인, 첨단 전자부품 못지않게 소재개발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스웨덴의 볼보는 유럽연합(EU) 후원으로 대학 및 기업들과 협력해 '배터리 섬유'란 신소재를 새로 개발했는데, 강판 대신 전기차의 차체로 쓸 경우 배터리기능도 담당하게 돼 차 무게를 15% 이상을 줄일 수 있다. 이와 별도로 볼보와 폴크스바겐 등 유럽 완성차업체들은 대학 철강회사 소재업체 등과 협력해 초경량 차량, 즉 '슈퍼라이트-카' 개발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탈리아 피아트는 국내 최대 철강사인 포스코와 함께 소재 경량화 협업을 진행 중이다. 포스코는 기존의 철강재로는 중국산 저가제품과 가격경쟁이 힘들다고 판단, '철강기업'에서 '소재기업'으로 변신을 모색하고 있는데, 그 핵심이 자동차용 신소재다. 특히 포스코가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트윕(TWIP)강'의 경우 형상이 복잡한 자동차부품으로 쉽게 가공할 수 있는데다 두께가 얇아도 강도가 높기 때문에 안전과 연비,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미래소재로 주목 받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트윕강을 사용할 경우 차체무게를 10% 줄여 연료비를 최대 7%,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13% 가량 감축할 수 있다"면서 "친환경자동차의 주력 차체소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완성차 '빅3' 역시 AK스틸, 아르셀로미탈, 티센크룹 등 6개 철강업체와 손을 잡고 '오토-스틸 파트너십'을 추진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래 자동차 경쟁은 가볍고 강한 신소재 선점 경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자동차회사와 소재회사들의 협업여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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