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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의 비명] <2> 가해자에게 아이 맡기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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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의 비명] <2> 가해자에게 아이 맡기는 나라

입력
2013.11.2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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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살 수 있는 기회는 많았어요. 아이는 '엄마한테 맞고 있다'고 분명히 의사표시를 했어요. 어른들이 흘려 듣지 않고, 시스템이 허술하지만 않았어도…."

지난달 24일 계모의 학대로 사망한 울산 피해아동 이모(8)양의 친모 심모(42)씨는 2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아이가 보냈을 시간을 되짚으면 이런 확신이 들어 더 괴롭다고 했다. 이양은 아동보호기관에 신고된 적이 있었다. 계모의 학대로 수차례 병원도 찾았다. 하지만 무수한 의심의 정황을 제대로 살펴본 사람은 없었다. 아동보호기관은 이사 간 부모를 통제하지 못했다. 친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나선 국가기관은 없었다. 이 중 어느 기관이라도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이양은 지금 살아 있지 않을까.

심씨는 2004년 6월 전 남편과 결혼해 이듬해 12월에 딸을 낳았다.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2009년 10월 남편의 요구로 떠밀리다시피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은 심씨는 "아이는 할머니가 키우게 하고 유학도 보내겠다"는 남편을 믿고 친권과 양육권을 내줬다. 심씨는 경제력이 없었다.

지난달 25일 저녁, 심씨는 경찰로부터 "아이가 잘못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이를 마지막으로 본 지 4년 만이었다. 심씨는 "지금도 아이 생활기록부나 진료기록을 보려면 친권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기관과 부딪친다"며 "똑같이 아이 죽음에 책임이 있는 전 남편 동의를 받아야 아이 기록을 볼 수 있는 상황이 상식적이냐"고 되물었다.

가해자 동의 있어야 상담

"엄마가 저를 때렸어요." 2년 전 유치원 교사가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며 포항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했을 때 당시 여섯 살이던 이양은 어른들 앞에서 똑똑히 말했다. 이양 손등에는 파란색, 보라색, 노란색 멍 자국이 선명했다. 서로 다른 시기에 생긴 멍, 지속적인 학대였다. 아동보호기관은 아동 신체학대라고 판정했다.

이양은 관리 대상이 됐지만 의료진의 진단, 상담원 의견 등을 종합해 가해자인 계모와 분리시키지 않고 상담을 진행하기로 했다. 계모가 상담에 순순히 응했기 때문이다. 반면 이양의 친부는 처음부터 "남의 가정사에 왜 끼어드냐"며 거부감을 드러내더니 두 달 후 인천으로 이사를 갔다. 아동보호기관은 계모, 이양 등을 상대로 18차례의 상담을 한 게 다였다.

현행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 가해자 후속조치는 강제조항이 아니다. 홍창표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홍보협력팀장은 "재발을 막으려면 가해자에 대한 사후 상담과 교육, 치료가 필수인데 가해자(부모)가 거부하면 도리가 없다"며 "가해자 후속조치를 강제하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의 '2012 전국 아동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6,403건 중 9.9%(635건)는 아동학대전문기관이 가해자를 만나지도 못했다.

학대 정황 심각하게 인식해야

이양은 다시 학대의 손에 맡겨졌다. 심씨가 확보한 진료기록에 따르면 이양은 지난해 1월 두개(頭蓋) 내 손상, 7월 피부 및 피하조직의 국소감염 등으로 병원을 드나들었다. 기록에 적힌 원인은 모두 '상세불명'이었다. 학대를 의심할 만한 결정적인 기회였지만 의료진은 신고하지 않았다.

학교나 보육시설의 교사와 직원, 의료진 등은 법에 규정된 학대신고의무자다. 하지만 이처럼 신고의무자조차 학대 징후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일이 흔하다. 복지부의 위 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에 의한 신고율은 36.9%로 일반인 신고(63.1%)보다 오히려 낮다.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은 "가정 내 학대는 아무도 안 보는 데서 이뤄지기 때문에 아이의 동선에서 학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교사, 의사 등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그러나 아동학대 예방 교육이 없어 본인이 신고의무자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어른들의 무심함이 학대 아동에게 치르게 하는 대가는 크다. 인생을 뒤바꿀 상처가 되거나, 때로는 목숨을 잃는다.

"가해자의 친권은 제한해야 마땅"

미국이었다면 어땠을까. 가해자인 부모를 격리시키고 상담과 치료를 했을 것이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익중 교수는 "미국은 가정법원에서 피해아동을 격리시켜야 한다고 판결이 나면 18개월 동안 부모와 아이를 분리시키고 그 기간에 부모를 상담, 교육하고 치료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며 "우리도 재학대를 막으려면 법적 기준을 마련해 격리가 필요한 피해아동들을 제대로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아동복지법은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피해아동의 상황이 긴급하다고 판단하면 3일(72시간) 동안 가해자와 분리시킬 수 있다. 최대 연장 가능한 48시간을 더해도 5일까지다. 이후에는 기관이 아이를 격리시킬 법적 근거가 없다. 친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부모가 가해자인 경우엔 아동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부모가 친권을 내세우며 아이를 돌려보내라고 해 원 가정, 즉 가해자의 품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지난해 학대아동 조치의 63.7%(4,079건)였다.

부모?가해자인데도 친권을 갖고 있다는 점은 약자 중 약자인 아동의 입장에서는 치명적이다. 민법과 아동복지법은 검사, 친족, 지자체장이 친권 상실을 청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학대로 인해 친권이 박탈되는 경우는 성폭력을 제외하면 1년에 한 두건 정도에 불과하다. 사회복지사의 요청에 따라 지자체장이 친권 상실을 청구한 사례는 아예 없다.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부모의 권한에 개입하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김상용 중앙대 법대 교수는 "가정법원과 아동보호기관이 긴밀히 협력해 가해자가 상담과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강제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친권 제한이 긴급히 요구된다고 판단될 시에는 가정법원이 신속히 친권을 일시적으로 정지하거나 박탈할 수 있도록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대응도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김 교수는 "현행법상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경찰에 출동 요청을 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실제로 함께 출동하는 비율은 3%도 안 된다"며 "경찰이 함께 출동하면 지금보다는 훨씬 가해자에 대한 개입이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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