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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6.5°/11월 26일] 선거 불복, 한강의 기적, 그리고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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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6.5°/11월 26일] 선거 불복, 한강의 기적, 그리고 전교조

입력
2013.11.25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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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맑고 쌀쌀한 날이었다. 담임교사는 소년을 교탁에서 끌어내렸다. 소년의 반장 당선 소감 대신 선생의 훈시가 교실을 메웠다. 요지는 "자율적으로 반장을 뽑더라도 아무나 시켜선 안돼." 교사수첩을 뒤적이던 선생은 학생 10명을 호명했다. 1등부터 10등까지 칠판 앞에 늘어섰고, 곧 새로운 반장이 뽑혔다. 교사의 선거 불복에 항의하거나 소년을 편드는 급우는 없었다. 전교생 600명 중 400등 언저리 소년은 덩둘하게 웃었다. 녀석은 중학교 시절엔 직선제 전교 학생회장을 지냈다.

엄마는 품에 묻혀 "억울하다"고 통곡하는 소년에게 딱 한마디 했다. "공부해." 쌍 코피가 교과서를 적시는 날밤이 이어졌다. 소년은 5월 전교 20위권으로 치고 올라갔다. 선생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소년에게 '제2의 한강의 기적'이란 별명을 붙이더니 교실마다 소년의 성취가 자신의 업적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소년은 씁쓸하게 웃었다.

사제간 아름다운 반전 드라마라고 추어올릴 법한 얘기는 막장으로 흐른다. 소년은 학우들로부터 시기와 놀림을 받았고, 언어장애와 유사 무대공포증이 도졌다. 교사의 호출에 어쩔 줄 모르던 소년의 부모는 교사인 친지의 귀띔에 10만원을 마련했다. 아침마다 아이들 준비물 살 돈이 없어 집집마다 꾸러 다니던 부모에겐 거금이었지만 친지 말에 따르면 당시 기준가였다. 교사는 실망한 표정으로 차도 마시지 않고 돈봉투만 쥔 채 일어섰단다. 한강의 기적에 버금가는 자신의 공이 얼마나 대단한지 거듭 각인시키면서.

소년은 정나미가 떨어졌고 성적은 다시 떨어졌다. 그때 일단의 교사들이 촌지를 받지 않고, 성적으로 아이들을 줄 세우지 않겠다는 '참교육'을 선포했다. 그들은 백마디 말보다 해직이란 행동으로 신념을 지켰다. 소년의 학교에선 지역에서 가장 많은 교사가 정든 교정을 떠났다. 소년은 담임교사의 눈을 피해 집회에 나가고, 관련 단체에 시를 지어 보내기도 했다. 해직 교사가 운영하는 문구점을 일부러 찾아가 귀동냥을 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덕분에 소년은 그나마 학교에서 희망을 봤다. 소년의 성적은 다시 올랐고, 결국 꿈을 이뤘다. 전교조가 교원평가를 거부하고 정치투쟁에 지나치게 매달릴 때면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지만, 전교조에 대한 믿음은 변치 않았다. 목사가 최고급 외제차를 소유하고, 교회가 북한처럼 세습을 하고, 정치꾼들이 회당 안에 무리를 만들어 권력을 나눠먹어도 소년이 신앙을 간직하는 이치와 같다. 여전히 헌신하는 목회자와 이웃을 아끼는 신자들이 주변에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덧 중년이 된 소년은 전교조에 대한 일부의 적개심을 이해할 수 없다. 평소엔 잘도 갖다 붙이는 국제기준을 깡그리 무시하고 망신을 자초하면서까지 전교조를 법 밖으로 내몬 정권의 조치를 '용납할 수가 없다.' 인권 개념이 희박하다는 평을 받는 인권위원장이 유감을 표명하고 법원이 퇴로를 열어줘도 꿈쩍하지 않는 정무적 고집을 '묵과할 수 없다.' 그런다고 전교조가 사라진다고 믿는 걸까.

예컨대 소년의 아내가 얼마 전 직장 다니는 친구로부터 들었다는 학교 현실은 얼마나 가관인가. "아들 초등학교 담임이 아침에 전화를 했어. 스타킹이 찢어졌다고. 설마 했지만 일하다 말고 교사가 콕 집어주는 스타킹을 사서 학교로 달려갔더니, 고맙다는 말커녕 질문을 하더라고. '(달랑) 이거 하나만 사오신 건가요?'" 전교조는 아직 할 일이 많다.

그나저나 소년의 아들도 내년에 초등학교를 간다.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필수라는데, 건설 잡부로 말년을 보낸 선친을 둔 소년은 초장부터 부실하다. 그래서 무관심을 깨고 아들을 세뇌 중이다. "아들아, 할아버지는 부자니?" "가난하죠." "할아버지는 지금 어디 있니?" "천국! 아, 할아버지는 부자예요, 천국엔 금은보화가 많으니까." "(아들의 깊은 깨달음에) 아멘!"

참, 소년은 자라 이 글을 쓰고 있다. 전교조를 해충에 비유했다는 분과, 틈만 나면 종북 타령하는 이들에게 바친다. 그리고 묻는다. "전교조가 활동하던 시기에 학교는 다니셨나요?"

고찬유 경제부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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