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6시40분 경북 경주의 관문인 신경주역 앞. 어둠이 깔리면서 기온이 뚝 떨어진 이곳에는 열차에서 막 내린 승객들이 택시승강장을 찾아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다. 50대 남성이 택시 문을 열려는 순간 택시기사는 행선지를 물었고, "불국사 간다"는 말을 듣고서야 타라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충효동 등 가까운 곳을 찾는 승객들은 여러 번 승차거부를 당한 끝에 겨우 택시를 잡아탔다. 주변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한 택시기사는 "일부 택시들은 장거리 승객만 골라 받는다"며 "기사들끼리도 자제하자는 움직임이 있지만 막무가내"라고 고개를 저었다.
신경주역 앞 택시기사들의 횡포가 도를 넘고 있다. 택시비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장거리 운행을 독점하기 위해 근거리 승차거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여기다 승객이 잊고간 스마트폰을 돌려주면서 고액의 사례비를 요구하기도 해 시비가 일고 있다.
경주지역 택시업계에 따르면 경주시 건천읍 화천리의 신경주역에서 경주시내까지는 2만원, 보문단지나 불국사까지는 5만∼6만원이 불문률이다. 이곳에서 포항까지는 8만원이 넘는 택시비를 요구하고 있다.
상당수 택시기사들이 불국사보다 먼 지역 승객만 가려받고, 가까운 곳을 찾는 승객은 뒷 택시에 넘기는 것이다. 신경주역사에서 5㎞정도 떨어진 충효동 주민 이모(64ㆍ여)씨는 "지난달 서울에서 마지막 기차를 타고 내려 택시를 잡았지만 여러대가 모두 승차거부를 해 집에 가는데 혼났다"고 말했다.
이들중 일부는 승객이 잊고 내린 물품을 돌려줄 때도 과도한 사례를 요구, 말썽이다. 자영업자인 김모(48)씨는 스마트폰을 택시에 두고 내린 다음날 아침 어렵사리 택시기사와 통화를 했으나 "지금 신경주역에 있으니 차타고 와서 10만원 내고 가져가라"는 퉁명스런 말을 들었다.
이에대해 경주시 측은 택시기사들의 불법행위를 단속키 위해 캠코드로 주간단속을 벌이고 있지만 퇴근시간인 오후 6시 이후에는 지도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 택시기사는 "저녁마다 단속 공무원들이 철수한 뒤에는 신경주역 앞에서 수십건의 실랑이가 빚어지는 등 무법천지로 바뀌고 있다"며 "횡포를 부리는 택시기사들의 리스트를 갖고 있으면서도 조치를 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불평했다.
한편 경주시는 지난해 3월 446대의 법인택시를 브랜드택시로 운영하면서 제복과 명찰 착용은 물론 문제의 택시기사를 퇴출하기 위한 삼진아웃제를 마련하고 있으나 효과는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김성웅기자 ks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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