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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11월 26일] 정의구현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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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11월 26일] 정의구현사제단

입력
2013.11.2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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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10월 교황 요한23세가 소집, 65년 12월 교황 바오로6세 때 막을 내린 로마가톨릭 교회의 제21차 세계공의회(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와 현실 세계와의 소통을 강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공의회는 당시 라틴아메리카에서 번진 해방신학에 대한 로마교황청의 응답이기도 했다. 그 결과 빈곤과 억압, 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의 해소를 교회의 책무로 본 해방신학에는 못 미쳤지만, 가톨릭 전통의 보수성과 일별할 만한 진보적 시각을 보였다.

▲ 다른 종교와의 대화와 전례 개혁 등을 강조한 것만도 한국 가톨릭의 공식적 제사 수용에서 보듯 큰 영향을 미쳤다. 더욱이 인권과 자유에 대한 교회의 관심을 촉구, 가톨릭 교회의 적극적 사회참여 길을 열었다. 74년 지학순 주교의 '유신무효' 양심선언 사건을 계기로 결성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정의구현사제단)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따른 사제단의 양심'을 근거로 들었다. 사제단의 1차 과제는 당연히 반유신 민주화 운동이었다.

▲ 유신시대와 제5공화국을 거치는 동안 사제단의 인권ㆍ민주화 운동은 빛났다. 각종 민주화운동 단체를 비롯한 사회ㆍ시민 단체와 연대해 굵직한 민주화 투쟁을 이끌었다. 김지하 구명운동과 인혁당 사건 진상규명운동,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조작ㆍ은폐 폭로 등으로 국민의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87년 민주화 이후 사제단의 활동은 사회정의의 지표가 되기는커녕 사회적 마찰과 갈등을 부르기 일쑤였다. 89년 문규현 신부의 '평양 축전'참석이 좋은 예다.

▲ 그 이후 남북ㆍ환경ㆍ노사 문제 등에서 사제단의 활동에 일부 급진세력은 찬사를 보냈지만, 중도세력마저 등을 돌렸다. 당장 가톨릭 교회 안의 눈길도 미지근하다. 국민 다수의 생활영역과 동떨어진 좁고 외진 영역에서 존재 부각에 매달려온 때문이다. 민주화라는 정치ㆍ사회적 지각변동 이후 정체성과 활동영역 재정립에 실패한 결과다. 그럴수록 인식의 편향성이 심화하는 악순환까지 드러내고 있다. 전주교구 박창신 신부의 연평도 피격 관련 발언도 그 필연적 귀결인 셈이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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